[살며 사랑하며] 오래되고 반복된 반응

입력 2025-08-11 00:34

어디에서 누굴 만나도 요즘은 대화의 후반부가 챗GPT에 대한 것이다. 어제의 뒤풀이 자리 역시 그랬다. AI로 번역한 작품이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됐다고 뒤늦게 취소된 일, 학생들이 AI에 의존해 과제를 제출하는 것을 선별할 방법이 없다는 하소연, 시간을 아끼게 된 데 대한 기쁨, 앞으로의 AI 방향에 대한 예측, 인간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는 챗GPT의 역할이 언젠가는 전도돼 인간에게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는 가정, AI가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흉내낼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감각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 친구가 필요 없다는 소회 등등.

인터넷이 보급되고 검색창을 사용하는 일이 일상이 될 때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사전을 찾거나 자료를 뒤지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한 회의적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의견이 다분했다.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인 도서관이 무용해지는 현상에 대해 개탄했다. 이젠 검색창도 도서관의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다른 어감을 가진 비슷한 뜻의 유의어를 찾아보기 위해 갖은 종류의 사전을 사모았던 세월이 저편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검색창조차 거의 필요치 않아진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좋았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주연배우 이름이 퍼뜩 떠오르지 않을 때,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쓰던 기억들이 불현듯 스쳐간다. 이젠 그런 유의 가물가물함에 대한 재미는 누릴 기회가 없다. 지역마다 도서관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에도 그랬을까. 도서관이 인류의 오랜 습성과 기쁨을 누락시키는 주범처럼 느껴졌을까. 이 역시도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2초 만에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인용한다. ‘필기(Writing)’에 대해 불신했다고. 글을 쓰는 건 기억을 쇠퇴하게 만들고 지식의 겉모습만을 남길 뿐이라 여겼다고. AI에 대한 지금 인간의 반응은 오래된 반응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라고.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