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이단 사회에 큰 해악… 교단 차원 연합 대응 체계 절실”

입력 2025-08-11 03:07
김혜진 변호사가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사무실에서 이단 대처 사역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그의 뒤로는 평소 마음에 새기고 있다는 이사야서 58장 11절이 적힌 액자가 보인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정통교단 노회장이던 아버지는 종종 사이비·이단 종교 교리 책자를 한 보따리 들고 귀가했다. 교단 안팎에서 이단 문제로 힘들어하는 동료 목회자들을 도왔기 때문이다. 법대생이었던 딸은 그런 책자를 들춰 보는 게 낯설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떤 교리가 문제일지, 법적으로 어떻게 이단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훗날 변호사가 된 그 딸이 처음으로 맡게 된 일도 이단에 대처할 법률 자문이었으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부를 만하다.

김혜진(44) 법률사무소 우진 대표변호사의 이야기다.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에 변호사가 된 후 돈부터 많이 벌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바로 이단 대처 일을 맡기셨다”며 “나중에 동료나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내가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부터 입버릇처럼 이단 대처 사역을 돕겠다고 얘기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김 변호사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사이비·이단 종교 문제 연구소인 현대종교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다. 2009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법연수원까지 마친 직후 시작했다. 그는 “한 기업에서 현대종교를 도울 변호사를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했다가 바로 일을 하게 됐다”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후 지금의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사회적 약자와 사이비·이단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북한 이탈 주민 지원, 학교 및 지역 고문변호사, 생명존중 및 재난안전 활동 등 공익을 위한 법률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법률사무소 이름 ‘우진(佑眞)’은 진심으로 돕는다는 의미다. 김 변호사는 서울 성복중앙교회(길성운 목사) 집사로 10년째 교회를 섬기고 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소외되고 억울한 이들의 편에 서겠다고 기도했죠.”

목회자인 아버지 사역을 지켜보며 자란 김 변호사는 중학교 1학년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아버지는 늘 그에게 용기를 부어주시는 신앙의 멘토다. “부모님은 늘 ‘너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다. 담대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살아가게 해주셨죠.”

그는 어릴 적부터 법조인을 꿈꿨다. 별다른 과외를 받아 본 적이 없지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해 고시반 생활을 할 때도 매 주말이면 아버지가 사역하시는 대전 교회로 내려갔다. 교회학교 교사 활동 등을 하고 저녁에 올라오는 생활을 3년간 반복했다.

“개척교회라 사람도 없고 형편도 넉넉지 않은 걸 알기에 아버지께 힘이 되고 싶었어요. 물론 힘도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헌신했던 시간을 주님이 허투루 보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김 변호사는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들은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서울 생활이 어려워 대전 본가에 내려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합격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합격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아버지와 네 시간 동안 감사의 찬양을 나눴죠.”

사법시험에 합격했음에도 고시원 생활을 전전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사법연수원에서 받는 월급 중 이것저것 제하고 남는 30만원으로 생활했다. 그런데도 십일조는 빠트리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변호사로 일하면서 돈보다는 일의 의미에 집중했다. 곳간을 알아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그때 경험했다.

김 변호사는 이단 문제를 다루며 가장 안타까운 점으로 가정과 신앙공동체의 파괴를 꼽는다. “이단으로 인해 갈등이 깊어져 가정이 무너지는 걸 보는 게 제일 슬프죠. 자녀가 부모를 고소하는 사례도 많아요. 가정과 친구 관계를 깨뜨리고 서로 간 신뢰를 허물어 사회 분열을 일으키는 등 사이비·이단은 단순 종교 갈등이 아니라 사회에 매우 큰 해악을 미치는 문제입니다.”

그는 한국교회가 연합해 더욱더 체계적으로 이단에 대응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교단은 이단 규정만 하고 사후 대응은 오롯이 개인 몫으로 놔두는 게 현실입니다. 교단 차원의 이단 자료 관리와 지원까지 즉각적인 연합 대응 체계 마련이 절실해요.”

최근 교계를 중심으로 입법 필요성이 제기되는 ‘유사종교 규제법’에 대해서도 그는 “종교의 자유와 상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 재산 헌납, 성폭력, 강요된 의사 형성 같은 사이비·이단들의 구체적인 위법 행위에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자유의 침해가 아니라 피해자 보호입니다. 피해자 구제에 중점을 둔 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변호사로서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김 변호사의 소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법조인으로서 철학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보는 일’이라 표현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스트레스도 크지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의뢰인을 보려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공감의 은사를 붙들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김 변호사의 책상 위에는 이사야 58장 11절 말씀이 놓여 있었다. “말씀 구절 중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말씀이 와 닿더라고요. 제 영적 상태를 딱 잡아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전 강단 있는 사람이 아닌데 지금 강단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오늘도 다시 일어섭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