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자금으로 고가 아파트 사들인 외국인들… “3000억 규모”

입력 2025-08-07 18:55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이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서울 강남 3구 등 수도권 고가 아파트 등을 편법 취득한 외국인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날 외국인 신분을 악용해 국내 부동산을 편법 취득한 49명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국에서 전자부품 무역 업체를 운영하는 외국인 A씨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이 회사를 통해 국내 업체에 물품을 납품한 것처럼 꾸며 법인세를 탈루했다. 이렇게 조세회피처로 빼돌린 돈을 다시 국내로 들여와 서울 한남동의 초고가 아파트와 토지 등 수십억원대 부동산을 사들였다. A씨가 매입한 아파트의 최근 실거래가는 1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A씨처럼 외국인 신분을 악용해 서울 고가 아파트 등을 편법 취득한 49명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7일 밝혔다. 임광현 국세청장 취임 후 첫 번째로 주가조작 등 주식 불공정거래를 세무조사했던 국세청이 이번엔 외국인의 부동산 편법 취득으로 칼날을 겨눴다.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기획 세무조사는 5년 만이다.

국세청은 서울 강남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수도권 고가 아파트를 취득한 외국인을 전수조사해 탈세가 의심되는 49명을 추려냈다. A씨처럼 탈루 소득 이용자가 20명으로 가장 많다. 편법 증여 사례 16명, 임대소득 탈루 혐의자 13명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전체 탈루 혐의 금액은 2000억~3000억원 규모”라고 밝혔다.


이번에 적발된 49명의 국적은 12개국이지만 미국과 중국 국적자가 대부분이다. 민 국장은 “미국과 중국 국적자가 3분의 2 이상”이라고 밝혔다. 한국 출신이지만 외국 국적을 보유한 소위 ‘검은 머리 외국인’(검머외)도 많다. 전체 세무조사 대상의 약 40%가 검머외로 분류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부친이 검머외 자녀에게 수십억원대 고가 아파트 분양 승계권을 무상 증여했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이번 세무조사는 내국인과 달리 대출 한도 6억원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 여러 혜택은 누리는 외국인과의 형평성을 감안해 기획됐다. 6·27 대출 규제 시행 전후인 6~7월 내국인의 아파트 취득 건수는 27.2% 줄어든 반면 외국인은 14.3% 늘었다. 해외 은행 등에서 6억원 초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국세청은 내국인과의 형평을 맞추기 위해 세법 개정도 건의한다는 방침이다. 외국인의 경우 비거주자 1주택 임대소득 비과세 적용 배제, 5년 미만 국내 거주 외국인의 1세대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제한 등의 아이디어를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민 국장은 “관계 부처와 논의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