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동그래서 머리를 까면 귀엽단 말을 듣는 것 같아요. 영화 ‘기생충’의 문광도 그랬죠.”
영화 ‘좀비딸’의 사랑스러운 할머니 밤순을 연기한 배우 이정은(55)은 극 중 역할이 귀엽다는 말에 멋쩍은 듯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원작 웹툰을 옮긴 듯한 싱크로율을 보여줬다는 말에 “특수분장을 했는데 표현이 잘 된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밤순은 아들 정환(조정석)을 도와 좀비로 변해버린 손녀 수아(최유리)를 살뜰히 보살핀다. 하얗게 센 머리, 정겨운 이미지가 낯설지 않다. 이정은은 뮤지컬 ‘빨래’에서 4년여간 할머니 역할을 소화했었다. 당시 ‘빨래’에서 그의 연기를 인상 깊게 봤던 필감성 감독이 ‘좀비딸’ 출연을 제안했다.
실제 열 살 차이에 불과한 조정석의 엄마 역할이 다소 부담스럽긴 했다. 이정은은 “과거 나문희·김수미 선생님도 내 나이 때 할머니 역을 하지 않았나. 오히려 이 나이여서 ‘힙한’ 할머니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밤순의 전라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위해 이정은은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5명에게 대사 녹취를 받아 반복해서 들으며 연습했다. 제주도 말씨인 ‘우리들의 블루스’(tvN·2022)의 정은희, 경상도 사투리를 쓴 ‘미스터 션샤인’(tvN·2018)의 함안댁을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촬영이 끝나면 번아웃이 올 정도”라고 했다.
그는 “사투리 연기는 리얼함이 기본인데 아무리 연습해도 도달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예전엔 ‘왜 안 될까’ 자책하며 괴로워한 적이 많았는데 지금은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스스로 덜 지치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이정은은 수많은 출연작 중 대표작을 꼽아 달란 말에 ‘기생충’과 ‘미스터션샤인’을 꼽았다.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줬다는 이유에서다. ‘좀비딸’은 또 한 편의 대표작이 될 듯하다. 지난달 30일 개봉 후 폭발적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첫날 관객 43만명으로 올해 개봉작 최고이자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7일 만에 손익분기점(220만명)도 넘어섰다. 천만 영화 ‘서울의 봄’과 동일한 속도다.
10여년간 쉼 없이 달려 온 이정은은 조금씩 쉬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천국보다 아름다운’(JTBC)을 함께한 김혜자 선생님도 ‘즐기면서 하라’는 말씀을 해주셨다”며 “여유를 갖고 작품을 해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