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에 100% 품목 관세 부과를 예고한 가운데 최근 한국의 반도체 수출 호조가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본부장도 “관세 협상이 타결됐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며 경계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8월 경제동향’을 발표하고 “미국과 주요국 간 무역협상 타결로 통상 불확실성은 완화됐으나 관세 부과에 따른 수출 하방 압력은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반도체를 중심으로 선제적 수출 효과가 축소되고 관세 인상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수출이 둔화할 위험이 높다”고 평가했다.
최근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좋은 흐름을 지속해 왔다. 7월 일평균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31.6%다. 2분기 반도체 수출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6.3% 증가했다. 지역별로 대만(80.8%)과 아세안 국가(41.3%)로의 수출이 급증했다. 대미 수출도 9.4%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는 게 KDI의 진단이다. 대만과 아세안으로의 수출 급증은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비한 일시적인 영향이 크다. 대만과 아세안이 관세가 오르기 전 반도체를 미국에 집중적으로 수출하는 전략을 썼고, 이 과정에서 중간재로 활용된 한국산 반도체의 수출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선제 수출 효과가 줄어들면 최근의 수출 증가세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구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100% 관세율은 한국에 직접 부과되지 않더라도 국내 반도체 산업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한국이 최혜국 대우를 받고, 대만과 아세안에는 높은 관세가 부과된다 해도 한국 반도체에는 상당히 부정적”이라며 “한국이 대만을 통해 미국에 반도체를 수출하는 구조라 관세 타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여 본부장은 이날 ‘제2회 통상정책 자문위원회의’에서 “지난주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이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취약업종에 대한 후속 지원 대책을 차질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 경제는 여전히 건설업 부진에 발목을 잡힌 상태다. KDI는 이번 발표에서 “건설업 생산은 5월 19.8% 줄어든 데 이어 6월에도 12.3% 감소했다”며 “최근 우리 경제는 건설업 부진에 주로 기인해 낮은 생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