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하나의 책은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입력 2025-08-11 02:11 수정 2025-08-11 02:11
다다서재는 돌봄, 다양성, 장애 등의 테마가 담긴 교양서를 내는 작은 출판사다. 지난달 사무실과 살림집을 겸하고 있는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김효근 대표는 “‘좋은 책은 팔리지 않는다’는 출판업계의 냉소를 깨고 싶다”고 말했다. 파주=김지훈 기자

다다서재는 두세 달에 한 권꼴로 책을 낸다. 김효근 대표와 부인 김남희 편집장, 두 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다. 2019년 첫 책을 냈으니 역사는 깊지 않다. 하지만 내는 책마다 돌봄, 다양성, 차별, 장애라는 일관된 주제로 작은 울림을 만든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는 그래서 잘 팔리지는 않는 책들이다. 최근 사무실이자 살림집인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그는 모든 게 그렇지만, 출판 분야에 발을 담근 것도, 다다서재를 만든 것도, 만드는 책의 일관된 주제도, 계획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시작은 밥벌이였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뿌리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대, 20대 암흑기의 서막

김 대표는 출판계에서는 보기 드문 공대 출신이다. 충북 제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공부도 썩 잘했다. 막연히 이과를 선택하고 공대로 가서 대기업에 취직한다는 미래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면서 “휩쓸리듯 공대에 진학했지만, 그것이 20대를 암흑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2001년 연세대 금속시스템 공학과에 진학한 김 대표는 입학 한 달 만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4년을 버티고 대학원까지 진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결국 포기했고 군에 입대한다.

일본어, 출판계로 이끌다

2009년 군 제대 후 어떻게든 생활을 해야 했기에 일본어 기술 번역을 시작했다. 사실 일본어는 어려서부터 친숙한 언어였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본어에 익숙했고 집에도 일본어 원서가 있었다. 재미 삼아 펼쳐보면서 일본어를 시작했고 일본 원서를 손에 놓지 않았다.

“왠지 출판 편집자가 어울릴 것 같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일본어 번역 일을 맡기던 분의 한 마디에 희미하게나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당시에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거의 공포에 가까운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던 때였다”면서 “무작정 편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다가 당시 저로서는 거금을 들여 한 문화센터의 편집자 과정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과정을 마친 뒤 출판사 여러 곳에 지원했다. 공대 출신에다 무경력자를 누가 뽑아주겠나 싶었지만 정말 운 좋게도 견실한 단행본 출판사에서 그를 선택했다. 2010년 8월이었다. 나중에 담당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시험을 치르는 뒷모습이 편집자의 뒷모습이었다”고 전했다고 한다.

밥벌이, 다다서재를 창업한 이유

그렇게 출판사 두 곳을 거치며 꼬박 8년을 보냈다. 다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배우자도 만나 결혼도 했다. 하지만 임금노동자로서 조직에서 생활하는 데 지쳐갔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두 사람은 도망치듯 차례대로 퇴사를 결심했다.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김 대표는 “출판사라는 조직으로 다시 들어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출판 말고 다른 돈 벌 수단도 없었다”면서 “진퇴양난 속에 생각해 낸 게 출판사 창업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일본 도서 전문 출판사였다. 일본어는 자신 있었으니 번역을 직접 해서 비용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반대가 심했지만, 당시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창업지원 사업에 선정된다는 조건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 다행히 창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150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그 돈이면 두 권 정도의 책을 낼 수 있었다. 2019년 4월 다다서재라는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을 했다.

첫 책, 다다서재의 정체성을 만들다

다다서재의 첫 책은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였다. 물론 일본 책으로 ‘돌봄’에 관한 학술서이자 에세이였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원서를 펼쳤지만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서 푹 빠졌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인간(human being)의 근원인 ‘있기(being)’를 밑받침하기 위해 타인의 의존을 받아주는 ‘돌봄’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새롭게 눈을 뜬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돌봄’에 관심도 없었고 ‘돌봄’을 전면에 내세운 책도 거의 없었다. 첫 책이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주변의 조언을 받아 ‘심리학’에 관한 책인 것처럼 포장해서 내놨다. 당시 책의 부제는 ‘일상이 괴로워진 당신을 위한 의존과 돌봄의 심리학’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1쇄도 다 소진하지 못하고 일부는 폐기 처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첫 책은 ‘돌봄’을 다다서재의 중심축으로 만들어 준 계기였다.

김 대표는 첫 책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컸다. 그는 “사람들의 욕구나 욕망을 자극해서 주머니를 여는 거는 우리의 능력 밖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우리는 우리가 좋게 읽은 책이 왜 좋은지를 가장 잘 드러낼 방법으로 책을 만들자고 생각하게 만든 반면교사가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최근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의 번역을 보완하고, ‘돌봄’을 앞세우며 제목과 표지를 새로 만들어 출간했다. 재출간된 책의 제목은 ‘있기 힘든 사람들’이고 부제는 ‘돌봄, 의존 그리고 지켜져야 할 우리의 일상에 대하여’다.

‘작은 것들의 신’, 정체성의 뿌리

김 대표는 어려서 책을 꽤 좋아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부터는 책과 멀어졌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학습에 방해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다시 잡은 첫 책은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논술 준비’라는 명목이었다. 그는 “우연히 본가 책장에서 찾아 읽었는데 입시에 길들여진 뇌 탓인지 처음에는 30%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아마 두 세 달 동안 스무 번 가까이 읽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처음 다다서재를 만들 때 ‘무슨 책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방향성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돌봄’을 중심으로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다양성과 차별), ‘서로 다른 기념일’(장애와 질병) 등의 책을 만들어 가면서 다양한 변주를 만들고 있다. 그는 “지금 돌이켜보면, 소외되고 연약하고 미력한 존재들을 다루는 ‘작은 것들의 신’이 저의 관심사에 꽤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짐작했다.

‘좋은 책은 팔리지 않는다’는 냉소를 깨고 싶다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김효근 대표(오른쪽). 김효근 제공

책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김 대표는 “속물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 “우선은 생계수단”이라고 했다. 당장 매출과 수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하나하나의 책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책을 만들 때마다 그 메시지는 달라진다. 최근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다다서재의 독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다다서재만의 일관된 메시지를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로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 저항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인간성에 대한 회의, 진보와 변화에 대한 냉소, 선의에 대한 허무가 강해지는 시대잖아요. 저희는 그런 시대에 책을 한 권 한 권 던져서 파문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냉소와 허무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고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내보내는 메시지(책)는 미력할지언정 무력하지는 않다고 믿으려 합니다.”

출판업계에서는 반쯤 농담으로 ‘좋은 책은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김 대표는 출판사를 창업한 이후 “일단 팔리는 책을 기획해 봐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 말의 이면에는 ‘너희가 좋은 책을 내는 건 알지만 그래서는 팔리지 않는다’는 냉소가 담겨 있다”면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당황스럽고 불만도 많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다다서재만의 원칙과 방향을 굽힐 생각은 없다. “저희의 미력이 업계에 별 영향이나 미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리고 아직은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좋은 책은 팔리지 않는다’라는 농담에 균열을 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