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후속조치로 미국산 사과와 배 등 과일류의 국내 수입 절차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최대 사과 주산지인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과수농가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시장 추가 개방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산 농산물의 국내 진입 속도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한미 관세협상 후속조치 중 하나로 미국산 과채류 수입 절차를 전담할 ‘미국 데스크(US데스크)’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별도 조직이 아닌 전담 직원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미국 측 수입 요청 품목에 대한 검역 절차가 보다 신속하게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모든 과채류 수입 품목에 대해 8단계의 수입 위험분석 절차를 의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전담 창구가 신설되면 품목별 단계별 처리 속도가 단축될 가능성이 커져 사실상 시장 개방의 수순이 시작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과는 국내에서 연간 50만t 이상 생산되는 대표 과일로 경북지역이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67%)을 차지한다. 미국산 사과는 수입 승인 8단계 중 2단계에 머무르고 있어 실질적인 수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북도 내 안동, 청송, 영주, 문경, 예천 등 사과 주산지 농민들은 “미국 데스크 설치를 검토하는 것 자체가 과수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경북연합회와 경북지역 농민회도 “검역 절차 간소화는 사실상 미국산 사과 수입을 허용하는 것”이라며 “농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비공식 개방 행위”라고 비판했다.
미국산 배와 감자도 수입 확대 가능성이 높은 품목으로 거론된다. 배는 현재 3단계, 감자는 6단계 검역 절차를 밟고 있으며 검역속도만 빨라져도 수입 시점이 몇 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검역은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절차로 인위적 개입은 어렵다”고 선을 긋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제도는 그대로여도 행정의 속도가 바뀌면 결과는 다르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북도는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국내 과수농가 보호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검역 절차 완화가 수입 물량 확대와 연결될 경우, 경북 과수산업 전반이 위축될 우려가 크다”며 “농식품부, 산업부 등과 긴밀히 협의해 대응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