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창씨개명된 일본식 가명을 써야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분류학자 정태현(1882~1971) 선생이 광복 80년만에 이름을 되찾게 됐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정태현 선생의 본명을 학술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추진한다고 7일 밝혔다.
정 선생은 구한말부터 해방 이후까지 우리나라 전역에서 수천 점의 식물 표본을 채집하거나 신종을 발견하는 등 한국 식물학 연구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광복 이후인 1957년에는 우리말로 편찬된 최초의 식물도감인 ‘한국식물도감’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창씨개명으로 강제 사용해야만 했던 ‘가와모토 다이겐’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학술지에 인용되면서 정 선생의 학문적 정체성은 크게 왜곡됐다. 그가 직접 채집한 식물 표본에는 정태현(鄭台鉉)이라는 본명이 기록돼 있지만,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이 그의 표본을 신종으로 발표하면서 ‘가와모토(T. Kawamoto 또는 Kawamoto)’ ‘타이겐(Taigen)’ ‘다이겐(Daigen)’ 등으로 표기해 일본 학자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었다.
특히 선생이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민생열귀나무’를 신종으로 발표하면서 명명자를 일본식 이름으로 표기했던 탓에 오랜 기간 일본 학자의 업적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국립수목원은 지난 5일 ‘국가수목유전자원목록심의회’를 개최, 일본식 이름으로 발표된 식물의 명명자를 정태현 선생의 본명인 ‘T. H. Chung’으로 복원키로 결정했다. 민생열귀나무의 학명에 들어간 일본식 이름도 본명으로 수정된다.
이번 조치는 국제 식물분류학계의 최근 경향을 반영했다. 국제식물학회는 지난해 학명에서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은 표현을 제거하고, 학술 명명에 담긴 식민주의적 유산을 없애기로 했다.
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은 “정태현 선생의 이름을 되찾는 일은 학자의 명예 회복을 넘어 왜곡된 학술 기록을 바로잡고 우리 민족의 생물학적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라며 “역사적 진실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