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회적 책임 소홀… 복음으로 돌아가라”

입력 2025-08-08 03:05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위원장인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목사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대한기독교서회 자료실에서 통권 800호를 맞은 소회를 전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눈을 돌려 어디를 보나 혼돈과 무질서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혼돈과 무질서의 원인 대부분은 우리 사상의 불안정과 빈곤에서 온다고 해도 잘못됨이 없을 것이다.”

이달로 통권 800호를 맞은 월간 ‘기독교사상’ 창간호에 실린 창간사 일부다. 대한기독교서회(서회·사장 서진한)가 1957년 8월 창간한 기독교사상은 한국교회와 사회를 분석하고 세계 기독교의 흐름을 소개해온 전문지다. 군사 정권기 6개월간의 정간 기간을 제외하고 68년간 매달 발행한 ‘기독 지성의 기록’이기도 하다.

월간 기독교사상 창간호인 1957년 8월호 표지(왼쪽)와 800호를 맞는 올해 8월호 표지. 대한기독교서회 제공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서회 자료실서 현 편집위원장인 지형은(66) 성락성결교회 목사를 만났다. 서회 편집위원장은 교수와 목회자로 구성된 편집위원이 1~2년마다 돌아가며 맡는다. 지 목사는 자료실 내 과월호 원본과 영인본을 일일이 보여주며 잡지의 역사를 소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800호 발행 소회는.

“창간사를 읽으며 작금의 교회 현실을 돌아봤다. ‘기독교가 그간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다. 하나님 앞에 참 송구스럽고 뵐 낯이 없다. 소위 ‘전광훈·손현보 현상’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근본주의 일각에서 복음 아닌 이념에 경도된 모습을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았나.

‘복음의 진리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사회와 세계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인도하겠다’는 창간사 다짐처럼 한국교회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겠다는 마음이다.”

-기독교사상의 68년 역사를 평가한다면.

“기독교사상을 설명하는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에큐메니즘’이다. 흔히 에큐메니즘을 ‘교회 일치 운동’으로 번역하는데, 본래 교회를 넘어 사회와 세계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독교사상은 이 두 가치를 바탕으로 범 그리스도교와 사회,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안을 복음적 관점으로 다뤄왔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사상은 신학 담론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책임감을 갖고 응답한 잡지라고 본다.”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는지.

“77년 서울신학대 재학 중 기독교사상을 처음 접했는데, 목마른 사람이 생수로 해갈할 때 드는 느낌을 받았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석사 과정과 독일 보훔대 박사 학위 중에도 틈틈이 접했다. 제 신학과 목회 여정의 동반자라 해도 다름 아니다.

기억에 남는 글은 59년 1월에 실린 ‘반공과 인권’이란 제목의 머리말이다. 내가 태어난 달에 어떤 글이 실렸을까 궁금해 찾아봤다가 내심 놀랐다. 독재 정권의 엄혹한 분위기에서 반공과 인권을 과감히 논해서다. 기독교계를 넘어 사회와 세계를 다룬다는 잡지의 창간 목적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잡지엔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겼다.

“60년대부터 군사 독재에 비판적인 관점을 꾸준히 유지해온 매체다. 유신 체제 아래였던 75년 5월호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전시와 판매가 금지됐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85년 10월부터 6개월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정간하기도 했다.

정보당국은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 여성대회’ 기사 중 언급된 북한 선교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았다. 기사를 실은 주간과 편집부장은 사퇴 수순을 밟았다. 당시 언론 검열 실태를 보여주는 실례다.”

-향후 깊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있다면.

“기독교사상은 한국 신학계의 담론을 주도해온 매체다. 60년대는 한국 기독교의 주체성을 논하는 ‘토착화 논쟁’을, 70년대엔 ‘민중 신학’ 논의를 촉발했다. 민중신학자 서남동 목사가 75년 2월호에 실은 글 ‘예수, 교회사, 한국교회’을 두고 저명한 철학자 김형효 서강대 교수가 타 매체인 ‘문학사상’에 비판의 글을 실은 사건이 유명하다. 80년대 이후론 여성 신학과 평화·통일 담론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앞으로 신자유주의 종말과 그 이후의 경제 구조, 민주주의의 미래, 인공지능 시대와 기후·생태 위기를 다뤄야 한다고 본다. 현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가져온 사건이라서다. 기독교의 본질 회복에 도움이 되도록 성경도 심도 있게 다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