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국립발레단장 “성장 멈추지 않으려면, 발레 전용극장 필요”

입력 2025-08-09 00:04
국립발레단을 12년째 이끌고 있는 강수진 단장 겸 예술감독이 최근 국민일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강 단장은 국립발레단의 발전을 위해 전용극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웅 기자

올여름 국립발레단은 유난히 바쁘다. 지난 5월 세계적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를 아시아 초연한 데 이어 6월에는 또 다른 거장 안무가 이어리 킬리안의 컨템포러리 발레 3편을 모은 ‘킬리안 프로젝트’를 대구와 서울에서 선보였다. 7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도쿄시티발레단과 한일 국교 정상화 기념공연으로 강효형 안무 창작발레 ‘허난설헌-수월경화’를 무대에 올렸다.

여름의 막바지인 8월에도 국립발레단의 무대는 계속된다. 오는 13~1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가 재연되고, 29~31일에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히스토리 오브 KNB 무브먼트 시리즈 3’ 공연이 펼쳐진다.

국립발레단이 지난해 초연한 존 노이마이어 안무 '인어공주'로 국립발레단은 8월 이 작품을 재연한다. 국립발레단 제공

드라마 발레 ‘인어공주’와 ‘카멜리아 레이디’는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겸 예술감독이 오랫동안 공들인 끝에 국내에 선보인 무대다. 2014년 2월 취임한 강 단장은 해외 유명 안무가의 무대를 소개하는 데 힘써왔고, 두 작품은 명실공히 지난해와 올해 한국 발레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힌다.

강 단장이 취임 이듬해인 2015년 시작한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호평받은 작품들을 모은 ‘히스토리 오브 KNB 무브먼트 시리즈 3’ 역시 국립발레단에게 의미 있는 공연이다.

“해외서 한국 발레에 관심 많고 러브콜 있지만…”

사진=윤웅 기자

강 단장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정기공연이 유난히 여름에 많은 이유에 대해 “국립발레단의 상반기 일정은 6월 말, 늦어도 7월 초에는 끝나지만 올해는 대관 일정이 여름에 집중되는 바람에 몰리게 됐다”며 서두를 뗐다. 이어 “대관은 우리 발레단이 아니라 극장이 결정한다”며 “많은 분이 아시는 것처럼 국립발레단이 전용극장(오페라하우스)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언젠가는 꼭 생겼으면 좋겠다”고 전용극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립발레단은 1962년 국립극장의 전속단체로 출발했다. 당시 발레는 한국무용과 함께 국립무용단에 포함됐다. 국립발레단은 1973년 독립 단체가 됐고, 2000년 독립 재단법인으로 바뀐 이후 예술의전당 입주단체가 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재단법인이 된 이후 자율성이 높아지고 재정 규모도 전속 단체 시절보다 몇 배 커졌다. 덕분에 러시아 거장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를 초빙해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스파르타쿠스’ ‘라 바야데르’ 등 기본 레퍼토리를 확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용극장이 없는 현실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단원 연습 등 효율적인 조직 운영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외 발레계와의 교류 및 창작 발레 개발 등 여러 측면에서 제약이 따른다. 강 단장은 “최근 해외에서 한국 발레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국립발레단의 작품은 물론 안무가나 무용수 교환 요청도 온다”며 “전용극장이 없다 보니 국제 교류가 쉽지 않아 늘 아쉽다”고 말했다.

2014년 단장 취임해 12년째 국립발레단 이끌어

강 단장은 대중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스타 발레리나 출신이다. 한국 발레계의 해외 진출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모나코 로열발레학교 졸업 후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해 1997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1999년에는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종신단원으로 활동하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립발레단장직 제안을 받고 귀국했다. 현재 3년 임기의 단장을 네 차례 연임하며 최장수 단장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국립예술단체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4연임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단장직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임성남 초대 단장님을 비롯해 전임자들의 고뇌가 느껴진다”며 “‘국립’이라는 이름이 주는 책임감이 크다. 단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발레단의 성장이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강 단장은 취임 첫해부터 기존 레퍼토리에 더해 연간 유명 안무가의 작품 1~2편을 국내 초연했다.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 존 테틀리의 ‘봄의 제전’, 존 크랑코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이 한국 관객과 만났다. 유명 안무가의 작품을 가져오려면 저작권을 보유한 재단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공연을 올리기까지 국제 관행상 3~4년 정도 걸리며, 3년 단위로 공연권 계약이 갱신된다. 강 단장의 경우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30년간 활약하며 구축한 네트워크를 토대로 단시간에 공연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국립발레단이 지난 5월 아시아 초연한 존 노이마이어 안무 '카멜리아 레이디'의 한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강 단장은 “노이마이어는 자신의 작품을 요청한 발레단에 대해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 공연권을 잘 주지 않는다”며 “국립발레단도 기존의 레퍼토리 면면과 단원들의 기량을 확인한 뒤에야 협업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계획보다 늦어진 것이 아쉽지만, ‘인어공주’와 ‘카멜리아 레이디’를 통해 단원들이 성장하고 관객들이 감동하는 모습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강효형, 송정빈 등 안무에 재능 있는 단원 발굴

강 단장은 최근 국립발레단 후원회를 활성화해 후원금으로 연습실 환경을 개선하고 해외 객원 발레마스터들을 연간 3~4명씩 초청하고 있다. 홀리오 보카 전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야닉 보캥 전 베를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등이 단원들의 기량 향상에 적지 않게 도움을 줬다.

안무가 양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도 강 단장이 전임 단장들과 차별되는 부분이다. 바로 단원들이 안무에 관심을 두고 도전하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현재 전 세계 메이저 발레단은 대부분 안무가 양성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국립발레단의 이번 ‘히스토리 오브 KNB 무브먼트 시리즈 3’에서는 강효형, 송정빈, 이영철, 박슬기 등 단원들이 안무해 호평받은 소품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KNB 무브먼트 시리즈'를 통해 안무 재능을 인정받은 국립발레단 단원 강효형은 창작발레 '허난설헌-수월경화'를 안무했다. 국립발레단은 지난 7월 한일 수교 정상화 60주년 기념공연으로 이 작품을 일본 도쿄에서 선보였다. 국립발레단 제공

강 단장은 “그동안 뛰어난 무용수들을 빠르게 많이 배출한 데 비해 안무가를 키워내는 시스템이 미비했다. 무용수들이 동료들과 작업하며 안무가로 성장하길 바랐다”며 “소품에서 재능을 보인 강효형과 송정빈이 안무를 맡은 전막발레 ‘허난설헌-수월경화’와 ‘해적’은 이제 국립발레단 레퍼토리가 됐고,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로 국립예술단체장 선정위 구성해야”

최근 문체부는 국립발레단 등 국립예술단체장을 공개 모집으로 선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단체장 후보자의 역량을 공개적으로 검증하고, 전임 단체장 임기만료 1년 전부터 선발 절차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강 단장은 “예술감독이라면 적어도 5년은 줘야 일관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며 “해외 발레단처럼 현 단장의 유임 또는 후임 내정은 최소 1년 전에 정하고, 선발 시 전문가들로 구성한 위원회를 꾸려서 뽑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그가 발레계에서 프로 무용수를 거쳐 예술감독으로 활동한 지 40주년이 된다. 그는 “그동안 달려오기만 했다. 나 자신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늘 앞에 놓인 일을 우선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쉴 줄 모르는 성격이지만 나에게 쉰다는 것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것과 같다. 국립발레단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