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청바지 광고 소동

입력 2025-08-08 00:40

1·2차 세계대전 시기엔 애국심과 국민통합이 광고의 단골 주제였다. 1917년 1차 대전 당시 흰 수염의 신사가 손가락을 뻗으며 “미군은 당신을 원한다”고 외치는 ‘엉클 샘의 모병 포스터’ 광고에 수백만 청년들이 자원 입대했다. 2차 대전으로 미국 산업 현장에 남성 근로자가 턱없이 부족하자 1942년 광고대행사 JWT는 “우리는 할 수 있다(We Can Do It)”를 외치는 젊은 여성을 광고에 내세웠다. 1940년 1300만명이었던 미 여성 노동자 수는 4년 뒤 1815만명까지 늘어났다(‘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

냉전이 끝난 뒤 도래한 풍요와 평화를 상징하듯 1990년대부터 상업 광고 전성시대가 열렸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베네통은 사회적 금기와 고정관념을 깨는 광고로 유명했다. 신부와 수녀의 키스, 흑인 엄마의 젖을 빠는 백인 신생아,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 등이 대표적이다. 2001년 말 “부자 되세요”를 외친 신용카드 광고는 21세기 한국의 ‘대박’ 욕망을 깨운 시발점이었다.

사회에 만연된 편가르기 현상이 투영된 듯 요즘 광고는 갈등의 전장이 되기 일쑤다. 한국에선 광고에 젖소(여성), 집게손(남성)만 나와도 여혐·남혐 프레임이 씌워진다. 영국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의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듯한 광고는 보수층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고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일 교체되기에 이르렀다.

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등장한 아메리칸 이글 청바지 광고가 최근 미국 사회를 반으로 갈라 놨다. 광고는 “스위니는 훌륭한 유전자(genes)를 가졌다”로 시작하는데 genes 자리에 청바지(jeans) 단어가 첨가된다. 발음이 유사한 단어들을 활용한 언어 유희다. 하지만 스위니가 금발 백인이란 점에서 인종 우월주의를 부추겼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라고 반박해 파문이 커졌다. 회사 주가는 소동 후 하루 만에 24%나 폭등했다. 광고는 세상의 거울이다. 광고 내용과 반응만 보면 지금이 1세기 전 전쟁 때보다 더 각박해진 듯 싶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