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중 같이 만나는 네 명이 있다. 사는 곳도 제각각, 하는 일도 다르다. 아이 나이조차 맞는 친구가 하나 없다. 그런 우리가 최근에 한 집에서 뭉쳤다. 미국에 사는 친구의 한국 나들이에 가족 동반 모임을 계획했다. 함께 나눌 이야기가 없을 거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우리는 금방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대화 주제는 다양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했지만 낯설지 않았다. 집에 돌아갈 때까지 서로 말이 없었던 아이들은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30년이 돼간다는 설명에 놀라워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나 오래간만에 가는 공간에서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요즘 다시 교회에 출석하는 일도 그렇다. 동네를 떠날 일이 생겨 나와 아이는 교회에서 멀어졌다. 동네로 다시 돌아왔지만 얼마간은 교회에 가지 않았다. 이제 제법 자란 아이가 다시 교회에 나가줄지 걱정됐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아이는 다시 교회 문턱을 넘었고 투덜거리긴 하나 성실히 주일성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부인하기 어렵다. 아이도 나도 교회가 아직 편안하지 않다는 걸. 교회에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거기에 있는 우리가 그저 어정쩡할 뿐이다. 그러나 불편한 환경을 바꾸려고 급하게 마음먹지 않으려 한다. “저도 2년간 아이만 주일학교에 보내면서 교회를 지켜봤어요. 제가 뭐라고 말이죠.” 고민을 토로하는 나에게 비슷한 과거를 공유해준 교회의 한 집사님의 말이 내겐 큰 위로가 됐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 우리 가족처럼 주일 예배에 간다 해도 교회가 서먹한 사람이 있겠다 싶다. 최근 한 목회자에게 이야기를 듣고서 그런 마음이 더 와닿았다. 여름 수련회에 친구를 따라서 온 한 아이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큰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 성도였다는 것. 잘 짜인 교회 행사에 가지 않고 아이가 대신 선택한 곳은 작은 공동체였다. 수많은 성도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그 아이에게 꼬치꼬치 캐묻긴 어려웠지만 2박3일 일정 동안 표정은 편안했다고 한다. 풍족한 재정이나 잘 갖춰진 인프라보다 중요한 건 무엇일까 한참 고민하게 했다.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자립준비청년을 취재하려고 찾아간 한 보육원에서도 편안함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떠올리게 했다. 이 기관은 아이들에게 1대 1로 후원자와의 만남을 연결하는 일에 꽤 공을 들였다. 다양한 경험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여러 귀찮은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다른 기관이 꺼리는 방식이라고 한다. 기관 원장은 “아직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며 나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일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기자에게 전했다.
아이와 후원자와의 만남은 기관 안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안면을 트는 게 먼저다. 기관 선생님들은 후원자 신상 확인은 물론 그가 아이 성향에 맞는지, 아이가 편안해하는지에 대해 여러모로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후 기관의 주변을 잠시 산책하는 것을 시작으로 좀 더 먼 곳으로 외출을 한다. 나중엔 함께 여행을 가거나 그 가정에서 지내다 오는 외박을 할 수 있다. 꽤 많은 아이가 정기적으로 후원자들의 집에서 평범한 일상을 지내다 온다고 했다. 보육원 아이들과의 만남이나 외출은 선물이나 행사가 있어야 한다는 건 내 편견이었다. 가끔 놀러 오는 조카처럼 집에서 놀고, 주일엔 함께 교회에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와 맺는 관계의 꾸준함이라고 했다. 불편하던 둘 사이가 가족처럼 편안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후원자가 아이에게 쏟은 정성이 그렇고, 긴장되는 상황을 감내하고 이런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이의 인내와 용기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편안함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것보단 어색함을 견디며 쌓아온 시간 속에서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내 친구들의 아이들이 웃으며 수다할 그런 날도 언젠가 오겠다.
신은정 미션탐사부 차장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