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광복 80주년, 8월의 질문

입력 2025-08-08 00:34

1945년 광복절에 모든 문제
해결되지 않았듯… 해방은
늘 다시 시작되는 이름이다

1948년 1월 30일 인도 뉴델리에서 마하트마 간디가 암살당했다. 파키스탄과의 평화적 관계 유지와 힌두·이슬람 화합을 강조하던 그에게 극단적 힌두교도 나투람 고드세는 분노했다. 그로부터 1년반 뒤인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가 암살당했다. 대한민국 육군 소위 안두희는 김구가 공산세력과 내통하며 남북협상을 시도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맞섰던 제국주의가 아니라 같은 민족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식민 권력에 대항하던 시기에는 공동의 적이 있었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의 분열은 때로 식민의 억압보다 더 깊고 가혹했다. 독립은 종착지가 아니었고, 해방은 결코 모든 문제의 해결이 아니었다.

김구와 간디, 두 사람은 이상주의자였고 조정자였다. 극단적 분열의 경계에서 공존을 모색했으며 대립을 멈추자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극단의 시대는 그들이 설 자리를 허용하지 않았고, 배제와 적대를 택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식민지배가 남긴 또 다른 유산일지 모른다. 제국주의는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균열은 내부로 파고들었으며, 혐오와 공포를 익숙하게 만들었다. 상대를 적으로 지목하는 정치가 일상화되었고, 공동체는 갈라졌다.

광복절은 자주와 독립을 되찾은 날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 땅의 역사는 단순한 승리의 연대기가 아니었다. 환희와 함께 분단이 시작됐고, 그 분단은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참혹한 충돌은 수백만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독립은 또 다른 시험대였고, 해방은 고통의 서막이 돼 버렸다.

1945년 8월 15일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쳤다. 어제까지 군림하던 일본인들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새로운 희망이 대신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도록 실현되지 않았다. 해방된 땅에서 공동의 미래를 준비할 겨를도 없이 한반도는 좌우로 찢어졌고, 이념이 생존을 결정했다. 이웃은 손쉬운 적이 됐으며,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로부터 80년이 흘렀다. 우리는 다시 광복절을 맞는다. 오늘날 주권, 자유, 평등은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어떤 것도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다. 혹독한 독재와 인권 유린을 견디고 가난과 차별을 넘어서야 했다.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를 수없이 견뎌낸 끝에 여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개인의 삶은 유한하지만 공동체의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단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 이 나라, 역사의 흐름은 훨씬 더 길고 복잡하며 때로는 비틀리고 멈칫거리기도 한다.

바로 그사이 개인의 영달과 공동체의 실패, 혹은 개인의 비극과 공동체의 진보 사이에서 우리는 어딘가 어긋난 현실을 마주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 개인들은 시대의 압력에 짓눌리며 역사의 터널을 지나간다. 세상에 밀리고, 권력에 눌리며,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이들. 그러나 그들 역시 역사를 만든다. 각자의 선택, 절망, 용기가 모여 한 시대의 얼굴이 된다. 우리는 모두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면서도, 그 안에서 방향을 잡고 한 걸음을 내딛는 존재들이다.

오늘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무너진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갈등을 견디고 있다. 80년 전의 광복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았듯, 지금의 우리도 여전히 긴 역사 속의 한 구간을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주어진 시대를 흘러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도, 어떤 순간에는 멈춰 서서 물어야 한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가.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지켜야 하며, 무엇을 과감히 잘라내야 하는가. 그렇게 이어지는 질문과 더불어 역사는 다음 페이지를 연다. 해방은 끝이 아니라, 늘 다시 시작되는 이름이다.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