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견디는 지혜의 언어

입력 2025-08-08 03:06

고등학교 시절 신학을 전공하리라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곧장 신학교로 진학하진 않았다. 사람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믿었기에 문학을 먼저 배우기로 했다. 그때 김기석 목사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지혜의 언어들’에서 그는 전도서 속 고대의 지혜를 오늘날 현장으로 불러내 사람과 하나님을 함께 깊이 바라보게 만든다. 어린 시절 내가 찾던 신학의 모습이었다.

책은 고대의 목소리와 현대의 감수성 사이에 섬세히 다리를 놓는다. 시간의 강 위에 놓인 투명한 다리처럼. 한쪽 끝엔 3000년 전 예루살렘의 지혜자 코헬렛이, 다른 편엔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서 있다. 물론 이 다리 놓기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고대의 본래 의도가 현대인의 언어 속에서 변형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위험을 감수한다. 고대의 지혜와 오늘의 삶이 서로의 거울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저자가 전도서를 유쾌하다고 보는 시선이다. 이는 결코 얄팍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삶의 유한함과 부서짐을 깊이 응시한 끝에 비로소 피어나는 웃음이다. 고통이 없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직시했기에 웃을 수 있다. 한계를 고통스럽게 인정한 자만이 터뜨릴 수 있는 웃음이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건 전도서의 현재적 기쁨에 관한 강조다.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낙을 누리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는 코헬렛의 시선으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라고 권한다. 전도서는 세상에 시선을 돌리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진정한 신앙은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삶의 모순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코헬렛의 지혜를 저자의 목소리로 다시 들으면 이렇다. “삶은 한 줌의 안개이지만 그 안개 속을 걸으며 햇빛을 느끼는 기쁨을 잊지 말라.”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그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을 배우는 게 지혜다.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것,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곧 지혜의 시작이라는 메시지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는 겸손의 신학이자 동시에 희망의 신학이다.

책을 덮으며 어린 시절 품었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전도서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사람과 삶을 깊이 이해하는 감각이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능력이다. 인간적 성숙 없이는 하나님의 지혜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에 관한 앎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

송민원 대표(더바이블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