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찍힌 총경들 “모르는 곳 유배처럼 쫓겨나”

입력 2025-08-06 18:50
경찰국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303호의 안내판. 경찰국은 2022년 8월 행정안전부 내 조직으로 신설됐다. 국민일보DB

순경으로 입직해 35년간 경찰에 몸담은 김현익 전북 군산경찰서장(총경)은 2023년 2월을 잊을 수 없다. 전북청 형사과장이었던 김 총경은 느닷없이 경정급의 112상황팀장으로 좌천됐다. 책잡힐 일은 2022년 7월 경찰국 설치 반대 총경회의에 참석한 것뿐이었다. 그러다 1년 뒤인 2024년 인사 때는 전남청 과장급으로 발령났다. 2007년부터 전북에서만 근무했고, 정년을 1년여 앞둔 그는 납득할 수 없었다. 경찰공무원 인사운영 규칙에 따르면 정년 잔여 기간이 2년 이내인 총경은 다른 시도청 인사교류 예외자로 분류한다.

김 총경은 6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유배처럼 쫓겨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12상황팀장 발령 당시 명예퇴직을 고민했지만 가족 만류로 더 남기로 했는데 ‘인사 보복’은 이어진 것이다. 김 총경은 지난해 하반기 인사에서 간신히 전북청 소속 서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국민일보는 2022년 7월 총경회의에 참석한 55명 가운데 해외 주재관 파견자 등을 제외한 전현직 경찰 49명을 인터뷰하고 37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경찰 조직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이들은 총경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김 총경처럼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3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초를 감내해야 했다.

총경회의에 참석한 A총경은 일선 경찰서장으로 취임한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에 지역경찰청 교통과장으로 발령났다. 경찰서장은 최소 1년 임기가 보장되던 관례에서 벗어난 처사였고, 자신의 특기와 무관한 인사였다. A총경은 “이심전심으로 다들 ‘회의에 갔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구나’라고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3년간 무력감에 빠져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조직에 기대하는 바가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경찰국 설립을 반대하는 총경회의가 열린 지 3년이 지났다.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은 일선 경찰서장이나 지방청 참모를 맡는 지휘관이자 중간관리자다. 윤석열정부에서 만드는 경찰국이 경찰 조직의 정치적 중립성을 후퇴시킬 것을 우려해 온라인 대화방에 모인 약 500명의 총경 중 55명이 2022년 7월 23일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에 모였다. 사상 첫 총경회의였다.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전 총경은 곧바로 대기발령 조치됐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하나회의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정면 공격했다. 이듬해 총경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인사 보복이 시작됐다. 참석자 중 인사 대상자의 절반가량이 총경보다 낮은 경정급 보직인 112상황팀장으로 발령됐다.

지방청 참모를 거쳐 서장 발령을 예상했던 B총경도 2023년 상반기 인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B총경은 “경찰서장 역할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가 있었는데 꿈이 짓밟힌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경회의 참석자들이 불이익받는 것을 보고 회의에 간 걸 어리석었다고 여기는 분위기도 씁쓸했다”고 전했다.

C총경은 “당시 경찰국 설치는 의견 수렴 기간이 4일 정도로 전례 없이 짧았다”며 “총경회의는 경찰 정책을 시행할 때 공정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회고했다. 경찰국 반대는 조직에 대한 충정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김현익 총경도 “경찰국이 생기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회의에서 의견을 들어보고 후배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C총경은 “(주변에서) 응원도 받았지만 바보 같다는 말이 더 많았다”며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바보 소리를 듣는지 의문이었다”고 했다. 이후 2024년 상반기 인사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서장으로 발령 나거나 연고지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기존 자리에 머무는 등 인사 회복이 안 된 경우도 많았다.

총경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사찰’이 있었다는 의혹도 나왔다. 복수의 참석자들이 회의 이후 감찰 및 정보 부서에서 자신의 근태뿐 아니라 사생활 관련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D총경은 “감찰에서 내가 누구와 술을 먹는지, 골프는 치지 않는지 등 동향 파악을 한 정황이 있다”며 “일부 직원은 ‘감찰 쪽에서 과장님에 대해 물었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E총경은 “총경회의 참석자들 동향 보고가 2~3개월마다 윗선에 올라가고, 관련 문서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했다가 전남청 112상황팀장으로 좌천됐던 이지은 더불어민주당 마포갑 지역위원장(경무관 명예퇴직)은 “감찰 쪽에서 직원들에게 내가 근무 시간뿐 아니라 퇴근 이후, 주말에 뭘 하는지 보고하라고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전 경무관은 “사찰을 누가 지시했고 실행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경찰 감찰규칙에 따르면 감찰 과정에서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일부 참석자 사이에선 총경회의를 주도하거나 회의 당시 발언 수위가 강했던 사람을 선별해 감시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왔다.

조민아 김이현 임송수 유경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