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80년… 이시바 “핵 없는 세상은 피폭국 사명”

입력 2025-08-06 18:39 수정 2025-08-06 18:41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원폭 전몰자 위령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전날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위령제를 마친 한복 차림의 여성들. EPA, AFP연합뉴스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80년을 맞은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전몰자 위령식·평화기념식이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주도하는 것은 유일한 전쟁 피폭국인 일본의 사명”이라고 밝히며 “미국과 핵 공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 평화기념식에는 120개 국가·지역 대표를 비롯해 약 5만5000명이 참석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참가자들은 80년 전 원폭이 투하된 시각인 오전 8시15분에 맞춰 일제히 묵념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막바지였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고 사흘 뒤인 9일에는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을 떨어뜨렸다. 두 도시는 폐허가 됐고 히로시마에서 약 14만명, 나가사키에선 약 7만4000명이 사망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두 도시를 합쳐 사망자 약 4만명, 생존자 약 3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시바 총리는 인사말을 통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초래된 참화를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핵무기는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을 재확인했다. 다만 핵무기 사용과 개발을 전면 금지하는 핵무기금지조약(TPNW) 가입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은 동맹국인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고려해 TPNW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핵군축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분열이 심화되고 안보 환경은 더욱 엄중해졌다”며 “핵군축·비확산 국제 체제의 근간인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아래 핵전쟁·핵무기 없는 세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내년에 열리는 NPT 운용검토회의를 앞두고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이 함께할 수 있는 구체적 조치를 찾아야 한다”며 각국에 “대화와 협조의 정신을 최대한 발휘해 달라”고 호소했다.

피폭자 문제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이시바 총리는 “피폭자의 평균연령이 86세를 넘었고 국민 다수가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됐다”며 “비극의 실상을 풍화시키지 않고 세대를 넘어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일본 피폭자 단체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에 대해 “핵폐기와 실상 알리기에 기여해온 이들 단체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행사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핵무기를 일본에서 운용하는 핵 공유에 대해 “비핵 3원칙 관점에서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미국이 핵무기를 포함한 전력으로 일본 방위를 보장하는 확장억제에 대해선 “핵무기 없는 세상을 목표로 노력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9일 열리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 80년 추모식에는 101개국·지역이 참가할 예정이다.

조승현 기자 cho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