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실에서] 상관<相關>

입력 2025-08-09 03:05
픽사베이

성경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길을 가다가 한 귀신 들린 여자를 만납니다. 귀신 들려 이상한 헛소리를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니 그녀가 불쌍해 바울과 실라는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버립니다. 여자는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면 좋고 잘한 일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우리가 좋은 일, 착한 일을 한다고 그 결과까지 우리에게 좋게 다가오는 것만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여인은 점치는 여자였습니다. 여자 주변에 그녀를 고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나갔으니 돈을 못 버는 겁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 누군가는 경제적 손해가 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열이 받은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이상한 죄목을 뒤집어씌워 고발합니다.

그 고발을 그냥 넘길 수 없는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가둬버립니다. 사람 살리는 좋은 일을 했는데 칭찬은커녕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힙니다. 애초 그 여자가 귀신 들려 힘들어해도 그냥 모르는 척하고 가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 여자가 불쌍해서 도와줬더니 도리어 감옥에 가는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런 일을 당하면 다음부터 좋은 일을 하고 싶을까요. 누군가 힘들어할 때 도와주고 싶고, 기꺼이 나서서 타인의 곤경을 해결해주고 싶겠습니까. 아마 오히려 이런 마음이 들 것입니다. ‘내가 다시는 남의 일에 참견하나 봐라.’ ‘이제부터 나는 절대 남의 일에 안 나선다.’ ‘내가 뭔가. 내 이익을 위해 한 것도 아닌데 이런 꼴을 당하다니.’ 그러면서 마음을 닫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어떤가요. 그들은 그런 고난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끊임없이 아프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기도해주고 도와주고 고쳐주고 일으켜 주었습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으면 그 영혼들에 어떻게든 복음을 전해 살려 보려 했습니다.

세상은 은근히, 하지만 끊임없이 이런 삶을 강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지 간에 상관하지 말고 너나 잘살면 돼.”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든지 간에 너만 잘되면 돼, 우리 가족만 잘되면 돼” 하면서 서로 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서로를 위한 삶을 막아 버립니다. 상관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합니다. 사랑해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도와줘라. 구제해라. 섬겨라. 살려라. 복음을 전해라.

끊임없이 어렵고 힘든 자들과 관계하기를 원하고 그들의 힘든 삶 속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들과 상관하기를 바랍니다. 서로 관계 맺기를 원하고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쉬운 삶이 아닙니다. 아니,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나 자신이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바울과 실라처럼 봉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괜한 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인생이 꼬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분명히 가르치십니다. 손해 보는 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너희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너희가 만일 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자들과 관계 맺고 그들에 삶에 개입하기를 원하십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입니다. 참견이 오지랖이 되고 상관이 주제넘은 일이 되는 시대 속에서 성경이 가르쳐 주신 대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그래야 하는 이유는 아직 우리 주변에는 힘들고 괴롭고 외로운 이웃, 아프고 가난한 이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 상관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상관하는 삶, 그게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삶입니다.

임병선 목사 (용인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