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원폭 투하 80주기

입력 2025-08-07 00:40

미국이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지 80년이 지났다. 9일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 80주기다. 히로시마와 나가시키에선 각각 14만명, 7만4000명이 숨졌고 생존 피해자도 많다. 그런데 요즘 유럽과 미국 언론이 새삼스럽게 원폭 피해자 스토리를 앞다퉈 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 사용 위협이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원폭 피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장면이었지만 인류는 그 위험성보다 무기로서의 위력에 더 주목하고 보유 경쟁에 나섰다.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핵무기가 1만2400여개 있다. 그간 핵확산금지조약(NPT, 1970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1996년), 핵무기금지조약(TPNW, 2017년) 등을 통해 핵 폐기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그나마 TPNW가 ‘핵무기를 전면 금지하자’는 가장 강력한 폐기 내용을 담았지만 정작 9개 핵보유국은 이에 불참했다.

근년 들어선 폐기는커녕 오히려 핵무기 의존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 이후 러시아는 수시로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있고, 이에 대비해 최근 미국은 러시아 인근에 핵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 2대를 배치했다. 이란-이스라엘 분쟁 이후 중동 국가들의 핵무기 보유 욕구도 커졌다. 한반도에선 북한이 핵을 선제공격 수단으로 쓸 수 있게 내부 규정을 바꿨고, 이에 맞서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핵 폐기 단체들은 유엔 창립 100주년인 2045년까지 ‘핵 없는 세계’를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하지만 요즘 국제 정세를 보면 20년 뒤엔 오히려 지금보다 핵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류가 막대한 양의 핵무기를 갖고도 일본 투하 이후 아직 한 발도 살상용으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무기 폐기 노력 못지않게 핵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한 셈이다. 그러려면 한반도든 우크라이나든 중동이든 적대감을 걷어내고 빨리 평화가 깃들게 하는 일이 급선무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