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 위기… 원격협진·주치의제도 등 과감히 도입해야”

입력 2025-08-08 00:04 수정 2025-08-08 00:04
강대희 한국미래의료혁신연구회 회장이 지난 4일 서울대 의대 연건캠퍼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 회장은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정부와 의료계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의료 정책을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현구 기자

의·정 갈등 사태가 1년 6개월 만에 봉합 수순을 밟고 있다.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은 복귀 뜻을 내비쳤지만 의료체계는 여전히 비상사태다. 의대생들이 장기간 수업 거부를 벌인 탓에 매년 3000명 이상 배출되던 신규 의사 수도 반토막 날 상황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 속에서 필수·지역의료의 위기는 더욱 심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대희 한국미래의료혁신연구회 회장(전 서울대 의대 학장)을 지난 4일 만나 해법을 들어봤다. 그는 “정부와 의료계 신뢰 회복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면서 “지역 의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원격 협진과 비대면 진료, 주치의제도 등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의·정 갈등은 ‘봉합된 수준’이다. 의료 개혁과 의대 증원은 완전히 다르다. 많은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 자체에 반대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근거 없이 나온 ‘2000명’이라는 숫자였다. 잘못된 정책이 국가의 운명을 흔들 수도 있다.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문제로 봐야 한다.”

-필수 의료 위기는 더욱 심해졌다.

“의대 증원 발표 이후 가장 먼저 대학 병원을 떠난 의사는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응급실 의사와 소아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의사였다. 윤석열정부는 진단과 처방, 관리가 모두 잘못됐다. 필수 의료 기피는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의학이나 검사의학 항목에는 비교적 객관적인 숫자가 매겨진 반면, 환자 생명과 바로 연결되는 뇌혈관 수술, 심장 수술, 암 수술 등 필수 분야는 제대로 된 수가가 매겨져 있지 않다.”

-지역에선 “의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지역의료는 어떤 상황인가.

“지역의료는 ‘지역 소멸’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지역의 일자리, 문화, 의료가 축소되기 때문에 연봉 4억원이 넘는 교수 자리가 있어도 몇 년 뒤면 다 떠나고 없다. 의료 수가가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경남, 전북 등 일부 지역에선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40퍼센트를 넘겼고, 경북 북부, 전남 도서 지역에선 집에서 병·의원까지 반나절이 넘게 걸린다. 지금 시스템으로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재명정부의 의료개혁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

“의료 정책의 중심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미래 의료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고혈압 진단 기준이 수축기 혈압 120㎜Hg 이상이라면 119㎜Hg와 121㎜Hg은 차이는 무엇인가. 의료를 더 이상 흑과 백, 네 또는 아니오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없던 경계성 고혈압, 전(前)당뇨, 자폐스펙트럼장애 등이 생겼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미묘한 경계와 스펙트럼 위에 있는 사람들을 케어해야 한다.”

-구체적인 구상이 있을까.

“미래 의료는 4P로 요약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예방(Preventive)과 예측(Predictive), 그리고 환자 맞춤(Personalized), 참여(Participatory)다. 이를 위해선 원격 협진과 비대면 진료, 주치의제도 등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자식이 지방에 사는 부모님에게 효도하겠다고 서울 ‘빅5’ 병원에서 암 치료 받게 하는 걸 막을 순 없다. 대신 암 수술은 서울에서 받더라도 암 환자에 대한 케어는 원격 협진으로 해소하자는 것이다.

이동 클리닉과 순회 진료소를 비롯해 재택의료와 방문간호 등 복합적인 그림도 그려야 한다. 디지털 헬스 기술을 이용한 웨어러블 디바이스, 인공지능(AI) 청진기, 심전도 패치, 연속혈당측정장치(CGM) 등 새로운 의료 기술을 수용해야 한다. 집과 마을 경로당, 복지관 등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또 지역마다 의료 자원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지역에 맞는 평가 지표도 필요하다. 서울대 의대 지역의료혁신센터에서 지역 단위로 의료 자원의 양과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지역의료혁신지수’를 만들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의료계에서도 거부감이 크지 않나.

“비대면 원격의료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미국에서 원격 의료가 전체 의료의 30%를 넘어섰고, 매년 2% 증가세를 보인다. 원격 약 처방은 물론 드론을 이용한 약 배달까지 시행하고 있다. 의료계에서 반발하는 항목들 예를 들어 의료사고나 대형병원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 등은 조목조목 짚어가면 해법이 나올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회복하기 어려운 불신이 생긴 것 같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정부는 현장 중심의 의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의료계 전문가와 소비자, 환자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의료인들도 새 정부와 논의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국민을 중심에 둬야 한다. 국민주권정부답게 국민이 원하는 의료 정책을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찾아야 한다.”

-전문가들이 2027년 이후 적정 의사 수를 추계할텐데.

“미국국립의학학술원(NAM)은 의사 추계를 위해서 매년 보고서를 업데이트한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도 일회성에 그쳐선 안된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기구 형태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국민 1000명당 의사 수, 병상 수와 같은 단순 수치에 빠질 게 아니라. 미래 인구구조, 변화하는 질병 패턴, 의료 기술 발전, 가구당 보험료 지불 수준, 건강보험 재정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숫자를 추계해야 한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