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영 목사의 다함께 선교] 말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입력 2025-08-07 03:02

한 교회의 선교집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선교를 위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성도들이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목사님은 한층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냥 나아가는 정도가 아닙니다. 선교를 위해 달려갑시다.” 성도들의 “아멘”도 더 커졌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외칩니다. “달려가는 것도 부족합니다. 이젠 비상해서 날아갑시다.”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고 성도들은 손을 들고 외칩니다. “아멘. 뛰어가겠습니다. 날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멘트. “이러한 선교를 이루기 위해 오늘 구체적으로 선교헌금을 작정합시다.” 그 순간 예배당에 침묵이 흘렀다고 합니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레 말합니다. “목사님… 날아가지 말고 그냥 걸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이 장면은 단지 한 교회의 일화만은 아닙니다. ‘주여 주여’는 크게 외치지만 막상 발걸음을 떼는 데는 망설이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말은 날아갈 듯하지만, 행동은 제자리인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선교를 말로는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을 드리는 헌신에는 미적거리는 우리의 이중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목회자들 사이에 자주 회자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사역을 부탁했을 때 돌아오는 3가지 ‘요’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왜요?”하고 묻고, 설명을 잘해주면 “제가요?”라고 반문하며, 마지막엔 “지금요?”라고 회피한다는 겁니다. 이 세 마디가 마치 신앙의 방어기제처럼 작동하는 모습은 우리 안에 자리한 헌신 회피의 본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자신의 부정함을 고백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직후 주저하지 않고 말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하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은 말로 그치지 않고 삶 전체로 응답합니다. 이보다 가슴 뛰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랑은 철저히 행함과 진실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받은 것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도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덧붙입니다. 그는 세 차례의 선교여행을 통해 삶 전체를 드렸고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길임을 알면서도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복음 전파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고백은 시작일 뿐입니다. 삶으로 이어질 때 믿음은 살아 움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상대위임령을 주시며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이 ‘가라’는 말씀 앞에서 뒤로 물러섭니다. 왜냐고 묻고 내가 하느냐고 묻고 지금이냐고 묻습니다. 선교에 대한 감동은 있지만, 그것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복음의 빚진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체험한 사람은 질문을 바꿉니다. “왜요?”가 아니라 “비록 다 이해하지 못해도 순종하겠습니다.” “제가요?”가 아니라 “제가 하겠습니다.” “지금요?”가 아니라 “지금 순종합니다.” 그렇게 고백이 행동이 되고 말이 발걸음이 됩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초대 선교사들은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파송된 수많은 선교사가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삶을 바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이며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단순히 아멘을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걸어가는 신앙을 넘어서 달려가고 나아가 비상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 선교의 사명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부터.

황덕영 새중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