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너무나 잘 알려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이 말씀은 의리가 상실된 이 시대에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비유는 율법 교사의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예수님은 반문하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그는 답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너 자신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은 칭찬하시며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다시 묻습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길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순으로 그를 보게 됩니다. 제사장은 종교적 직분자로 도덕과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피해자를 외면하고 지나갑니다. 레위인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였지만 역시 그를 피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혐오 대상이던 사마리아인은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싸매고,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자신의 짐승에 태워 여관까지 데려가 돌봐줍니다.
이것이 의리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의리를 종종 감정이나 감성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 의리는 행동입니다. 책임지는 사랑, 불편을 감수하는 헌신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을 돕기 위해 시간을 잃고, 돈을 쓰고, 계획을 바꾸고, 불편을 감수합니다.
우리도 신앙인이지만 때론 제사장처럼, 때론 레위인처럼 행동합니다. “바빠서” “위험해서” “관계없는 일이니까”라는 핑계로 의리를 저버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이웃 사랑은 머물러 있는 마음이 아니라 움직이는 발, 내미는 손, 흘러나가는 비용입니다. 신앙은 앎(지식)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만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지쳐 쓰러진 이, 관계에서 배신당한 이, 소외된 이, 차별받는 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만나야 할 ‘강도 만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멋진 말이나 설교가 아니라 진짜 의리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도가 던질 질문은 더 이상 “누가 내 이웃입니까”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야 합니까”여야 합니다.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먼저 시간을 들이는 사람. 그가 진짜 의리 있는 사람, 복음의 사람입니다. 이 시대는 의리를 잃었습니다. 책임 없는 관계, 차가운 관계, 조건부 사랑이 만연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사마리아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아니라 거리에서, 골목에서, 병상 곁에서 진짜 이웃이 되는 공동체 말입니다.
복음은 ‘포기하지 않는 의리’입니다. 우리 모두 죄와 고통에 눌려 쓰러진 ‘강도 만난 자’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다가와 싸매고 피 흘려 값을 치르고 끝까지 책임져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내려놓고 이 땅에 내려와 죄와 상처로 얼룩진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의리’의 절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끝까지 책임지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그 복음 받은 자로서 외면하지 않고 ‘의리 있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무열 목사 (미전교회)
◇경남 밀양 미전교회는 1933년 4월 15일 설립 이래 93년의 세월을 이겨내 왔습니다. 현재 성도 수는 4명이지만 마을 이장 사역도 맡는 박무열 목사와 함께 지역사회를 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