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고정희 (15) 교회조차 품지 못한 재일조선인, 주님께 인도하기로

입력 2025-08-08 03:04
고정희 선교사가 2018년 일본 오사카 조선학교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고 선교사 제공

2014년 6월 말 교회의 생일을 맞아 주일 예배에 재일조선인 할머니 가족을 초대했다. 할머니는 아껴뒀던 쑥으로 성도들과 함께 먹을 인절미를 잔뜩 만들어 오셨다.

“교회에 왜 조총련이 왔나요.” 교회 안이 술렁이며,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됐다. 몇몇 성도들의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나 보다. “죄송합니다.” 우리 부부는 얼른 성도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이 분위기가 노회에까지 미쳐 남편이 어려움도 겪었다.

일본은 거리에서 교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도시인 도요타 외곽에 무목교회가 있다고 들었지만 그곳에 사는 동안 교회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교회에 소경 바디매오와 같은 영혼이 찾아왔거늘, 교회가 환대하지 못했다. 시각장애인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를 많은 사람이 들었지만 누구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하고 잠잠하라”라고 꾸짖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나서지 않았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 땅에 사는 재일조선인들의 외치는 소리다. 110여년 전 일제식민지 때 비자발적으로 이주한 후 1945년 조국이 해방됐지만 남한으로도 북한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야 했던 60만명의 조선인들. 조부모의 삶에서 시작해 이제는 6대 자녀들까지 내려오는 아픔…. 80년이 다 되도록 이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사라진 나라 조선을 그리워하며 남북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살아왔다.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은 이들에게 부여된 건 ‘조선적’이다. 이들은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움직인다. 요즘은 한국 여권을 가진 조선인들도 많지만 한국인으로서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여행 정도가 허용된다. 이들은 모두 특별 영주권으로 살고 있다.

한국인 대다수는 조선적을 가진 이들을 북한 국적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일본과 북한은 정식 수교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북한 국적으론 일본에 살 수 없다. 110여년 전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라 ‘조선’을 지키고 있는, 우리가 ‘총련계 재일동포’로 아는 이들은 무국적자들이다.

할머니와 그의 모든 가족에게 죄송했다. 마음 졸이며 어렵게 찾아왔는데 교회가 문을 열어주지 못했다.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들을 환대하지 않는다면 누가 품을 수 있을까. 이 일로 마음이 아팠지만 조선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들이 단단히 뭉쳐 사는 이유는 ‘세상이 냉대하고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눈뜨기 원하는 60만명의 조선인을 찾아가 주님께 인도하라고 부르신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우리 가족부터 순종하기로 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라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막 10:49)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