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인간의 뇌를 단지 신체의 조정자가 아니라 이성과 감정, 자아의 중심으로서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핵심이라 말한다. 인간의 지능은 하나의 단일 능력이 아니라 언어, 수리, 공간, 공감, 대인관계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문제를 해결하고 의미를 창조하는 다차원적 능력이다.
신은 인간다움이 좌뇌와 우뇌가 조화를 이룰 때 온전히 발휘되도록 만드셨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인공지능은 유독 좌뇌의 기능, 즉 논리와 추론, 정답을 도출하는 능력에만 집중해 왔다. 그 결과 고도화된 인공지능일수록 오히려 인간다움에서 멀어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대중의 일상을 휩쓴 지난해 2월 뉴욕타임스에는 인공지능이 오히려 인간의 일터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 것이라는 흥미로운 기고문이 실렸다. 겉으로는 우리가 가진 두려움과 상반된 듯하지만 핵심은 바로 ‘소프트 스킬(soft skills)’의 중요성에 있었다.
의사소통이나 협업, 감성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소프트 스킬은 인간이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는 고유한 역량이다. 반면 시장조사, 통계 분석, 편집과 같은 하드 스킬은 이제 인공지능의 손에 넘겨지고 있다. 결국 미래 사회는 인간 고유의 감성과 공감, 관계 능력을 더 절실히 요구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당면한 문제는 대한민국의 미래세대가 과연 이런 인간다움의 능력을 충분히 배우고 있느냐는 점이다. ‘2025 청소년 통계’(여성가족부·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13년 연속 자살이다. 무엇이 아이들을 그토록 절망토록 했을까. 학교 현장은 과연 안전한 공간인가.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정직해야 한다. 오늘의 학교는 점수와 등수로 아이들을 평가할 뿐 그들의 감정을 묻거나 마음을 살피는 공간이 아니다. 친구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지, 무너진 마음을 어떻게 회복할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여러 해 전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 개념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인성교육은 전통 예절이나 도덕 교과로 환원돼서는 안 된다.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고,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며, 관계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 즉 감성의 근육을 기르는 것이 진정한 인성교육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정서학습(Social and Emotional Learning·SEL)의 핵심이다.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더욱 필요한 교육임이 분명하다.
미국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SEL을 국가 차원에서 도입해 왔다. 일리노이주는 이를 법제화해 모든 학교에서 감정 인식, 자기 조절, 공감 능력, 관계 형성 등을 필수로 교육하고 있다. 그 결과 학교폭력은 줄어들었고, 학업 성취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일본 또한 SEL을 기반으로 한 ‘공감 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공감 훈련을 실시하여 교실 안 신뢰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은 자존감 회복의 가장 중요한 토대다.
우리는 이제라도 ‘한국형 SEL’을 본격 도입해야 한다. 경쟁과 서열 중심의 교실을 감정과 관계를 배우는 교실로 바꿔야 한다. 감성지능은 미래 생존의 기술이다. 지금 격렬한 논의 중인 인공지능 교과서 역시 지식 암기와 문제 풀이 중심에서 벗어나 관계와 감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
인공지능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금, 이것만은 반드시 기억하자. 온전한 지능은 좌뇌만이 아니라 우뇌의 감성 역량으로 완성된다는 점을. 지금이야말로 ‘인공감성지능’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권수영 연세대 인공감성지능 융합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