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체가 이어지던 거리가 시원하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도 조금은 헐렁하다. 여름 휴가가 절정에 이르렀나 보다.
필자는 국내 여행을 갈 때 버릇처럼 눈여겨보는 게 있다. 책방이 얼마나 있는지부터 살펴본다. 책방이 모여 있다면 말 그대로 ‘힙한’ 여행지다. 전북 전주·군산, 대전, 강원도 속초·동해, 경기도 수원 등이 그렇다.
같은 업종이 모이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 ‘대구 곱창 골목’ ‘마산 아귀찜 거리’처럼 말이다. 당연히 과거에는 책방 골목이 흔했다. 서울 종로도, 부산 보수동도 모두 책방 거리였다. 19세기 영구 런던 채링크로스는 책방 거리였다. 국내 독자들이 좋아하는 ‘채링크로스 84번지’라는 책이 있다. 미국 여성 헬렌과 서점 ‘마크스’의 점원 프랭크 도일이 20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마크스가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있었다. 지금은 서점이 거의 사라졌고 100년이 넘은 ‘포일스’가 남아 그 시절을 증명할 뿐이다.
요즘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정말 책방이 많다. 2025년 5월 전주영화제 기간에 지도 중심 서점 ‘프롬투’에서 만들어 배포한 책방지도에 따르면 대략 16개 정도가 있다. 한옥마을 밖까지 포함하면 책방의 숫자는 훨씬 많아진다. 전주는 매년 봄 국제그림책도서전과 독립출판 북페어 책쾌를, 가을에 독서대전을 연다. 조선 후기부터 전주 남문시장 근처에서 방각본을 찍어 판매하던 책방 문화가 존재했다니 책의 도시 전주가 될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책이 점점 덜 팔리는 시대, 책방 거리가 만들어지려면 여러 요인이 만나야 한다.
우선 거리의 고유함이 필요하다. 전주에는 한옥이 있다.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이 전주성 성곽을 헐고 안으로 들어왔다. 전주 사람들은 1910년경 풍남동 동쪽에 700여채의 대규모 한옥촌을 만들며 저항했다. 시간이 흐르자 한옥은 낡고 불편해졌고, 1977년 한옥 보전지구 지정으로 한옥의 개보수가 금지되자 사람들은 떠났다. 1999년 한옥마을 조성 사업이 시작되고 거리가 정비되자 한옥의 가치가 부각됐다.
한옥과 더불어 문화 콘텐츠도 필요하다. 한옥마을 인근에 경기전, 전동성당, 전주향교 등 볼거리가 더해지며 전주는 가고 싶은 여행지로 떠올랐다. 그러자 게스트하우스, 카페, 베이커리가 속속 들어서며 골목상권이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게 동네책방이다. ‘물결서사’ ‘살림책방’ ‘소소당’ ‘서점 카프카’ ‘에이커 북스토어’ ‘잘익은 언어들’ 등은 단순한 책방이 아니라 전주를 여행의 도시로 만든 콘텐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네책방과 더불어 지역 발전을 이루겠다는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더해져야 한다. 전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주형 책방을 따로 안내한다. 전주 지역 도서관은 지역 서점 인증을 받은 책방에서 공공도서를 구매한다. 전주 한옥마을의 책방 거리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