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편안함 떠나 낯선 환경 속 자신 성찰

입력 2025-08-07 00:10
한국관광공사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감각 있는 여행자들 사이에 주목받는 ‘요즘여행’ 콘텐츠로 ‘불편한 여행’을 소개했다. 일상의 편리함과 익숙함을 잠시 내려놓고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집중해 보는 새로운 여행 방식이다. 충남 공주 가가책방, 강원도 홍천 행복공장, 경북 안동 맹개마을, 수도권 불수사도북 종주 산행이 추천됐다.

5평 책방의 오만가지 인생, 가가책방

불편하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보내는 하루가 요즘 여행 트렌드로 뜨고 있다. 휴대전화나 인터넷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을 마주하는 ‘디지털 디톡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건강한 고독’ 등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맞물려 주목받는다. 충남 공주 ‘가가책방’을 가득 채운 메모를 들여다보는 관광객. 한국관광공사 제공

간판도 사람도 없다. 불도 꺼져 있다. 손님이 직접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야 한다. 비밀번호는 책방에 적힌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 알아내고, 문을 열고 들어가 이용 방법을 정독해야 비로소 무인책방 운영 방식을 알게 된다. 상점을 열고 마감하는 주인처럼 조명과 에어컨을 켜는 것부터 모두 손님 몫이다.

찾아온 손님들은 이를 즐긴다. 메모지를 들추며 의도치 않게 감춰진 스위치를 찾아내는 것부터 잘 짜인 방탈출 게임을 하는 듯하다. 손님이 남기고 간 엽서가 하나둘 모이면서 지금의 메모서가로 바뀌게 됐다. 책방 가득 메모를 들여다보는 일이 또 다른 독서다. CCTV도 없는 이곳은 ‘최소한의 관여’를 통해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최대한의 참여를 끌어낸다. 가가책방의 키워드는 불편함에서 어느새 사람에 대한 신뢰로 옮겨간다. 5000원 입장료는 손님들의 권유에 생겼다. 손님들이 책을 구매하기도 그렇고 무료로 운영하다가는 공간이 사라질 것을 염려해 하나둘 의견을 낸 것이다. 그래서 단서가 붙어 있다. ‘좋았다면’ 입장료를 계좌로 내달라고 말한다.

오픈 후 한동안 손님들은 불편함을 개선하도록 ‘변화’를 요구했다. 자물쇠 대신 원격 도어락이나 인터넷 설치 등이 그것. 하지만 지금은 입을 모아 변화를 반대한다. 불편한 이 공간이 자생하도록 두는 것이 모두가 상생하는 방법임을 느껴서다.

나 홀로 독방에서 24시간, 행복공장

강원도 홍천 '행복공장' 독방 입구. 한국관광공사 제공

강원도 홍천군에 자리한 행복공장에는 1.5평(5㎡) 남짓한 독방에 하루 동안 혼자 머물며 자신과 마주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 검사와 변호사로 활동했던 고 권용석 씨가 연극인 아내 노지향 원장과 함께 성찰과 나눔을 통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설립했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스마트폰이나 TV 등 전자기기가 없는 독방에 자신을 가두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어른 둘이 누우면 꽉 찰 정도의 작은 방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입구에 커튼으로 분리한 화장실이 있고 작은 세면대와 좌식 탁자, 요가 매트, 다기 세트 등이 있다. 독방 문은 밖에서 잠그고 식사는 배식구를 통해 제공된다. 탁자 위에 놓인 방명록에는 10대, 20대, 중장년층 등 이 방을 거쳐 간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과 이야기가 담겼다. 누군가는 고민을 남겼고 누군가는 거기에 답이나 응원을 달았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나만의 공간에서 자신을 잘 살핀 후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을 조건으로 가석방돼 일상으로 복귀한다. 프로그램은 보통 매달 첫째 주말에 진행되나 사정상 변동 가능하며, 참가비는 1박 2일 기준 15만 원이다.

산봉우리 속 고립된 섬, 맹개마을

낙동강 물줄기에 둘러싸인 경북 안동 맹개마을. 한국관광공사 제공

경북 안동의 깊은 골짜기에는 ‘트랙터’로 강을 건너야만 방문할 수 있는 맹개마을이 자리한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뒤로는 청량산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가 감싼 이곳은 육지 속 섬처럼 접근이 불편하지만, 이 일대의 풍경은 조선 시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조차 친구에게 남긴 문장에 언급했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선사한다.

맹개마을은 약 20년 전 김선영·박성호 부부가 귀농해 밀 농사를 지으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마을에서는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저녁 식사도 체험할 수 있다. 예약자만 즐길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트랙터 타기 체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면 맹개마을에서 트랙터가 마중을 나온다. 마을에서는 방문객이 고요한 하룻밤을 누릴 수 있는 숙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맹개마을은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한국관광의 별’ 등에 이름을 올렸다.

1박 2일 ‘숲식’ 사우나! 강북5산 종주

'불수사도북' 강북5산 종주 코스인 북한산 만경대에서 바라본 백운대(왼쪽)와 인수봉. 한국관광공사 제공

모든 것이 갖춰진 편리한 도심 속, 일상의 안락함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밀어붙이며 고요와 고통 속에서 나를 마주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불수사도북’ 종주.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다섯 산의 머리글자를 딴 이 코스는 총거리 약 45㎞, 누적 상승고도 약 4000m, 종주에 스무 시간 이상 걸리는 극한의 여정이다. ‘강북5산 종주’라고도 한다. 서울 공릉동 백세문에서 출발해 다섯 산의 정상을 찍은 뒤 서울 불광동 대호아파트로 하산하는 길을 정석으로 친다. 그렇다고 이 코스가 원칙은 아니다. 능선을 타고 다섯 산의 정상을 한달음에 오르는 것이 이 산행의 목적이다. 불수사도북 종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하며, 평소 뒷산 산행 등을 통해 산의 환경과 지형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섯 산을 나눠서 한 산씩 미리 올라보는 것도 완주에 도움이 된다. 방풍·방수 재킷, 헤드램프와 여분의 보조 배터리, 휴대전화와 지도, 충분한 물과 행동식은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

종주에 도전하기 전 북한산우이역 부근에 자리한 ‘우이동 산악문화 H·U·B’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H·U·B는 히말라야(Himalaya), 엄홍길(Um Hong-gil), 북한산(Bukhansan)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다양한 산악 체험이 가능한 산악문화복합공간으로,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개 봉을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업적을 기리는 엄홍길전시관과 유익한 등산 상식을 접할 수 있는 산악체험관을 운영한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