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양안(중국·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군의 군사적 개입은 ‘레드라인’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북한 위협에 대비해야 하는 안보적 특수성을 미국에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대만 문제로 중국과 충돌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동맹국에 적극적 역할을 요구한 데 따른 대처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재명정부의 실용외교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5일 외교·안보 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한·미 안보 협상 테이블에서 한반도 안보 상황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미국의 기류 속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당면한 위협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설득한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안보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야 하는 한반도 안보 상황의 특수성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다른 외교 당국자도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과 관련해) 동맹 관계를 염두에 두고 움직일 수밖에 없더라도, 한반도 안보에 공백이 없도록 그 과정을 매끄럽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움직임은 동맹을 활용한 대중국 압박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역할 요구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지난달 동맹국인 일본과 호주에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놓고 전쟁할 경우 어떤 역할을 할지 명확히 밝히라는 압력을 가했다. 한·미 안보 협상 테이블에서도 미국은 같은 취지의 요구를 제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고위 당국자는 “양안 문제에 대한 한국군의 군사적 개입은 일종의 ‘레드라인’으로 봐야 한다”며 “우리는 한 땅에, 머리에 직접적인 위험 요소가 붙어 있다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양안 분쟁에 병참 및 무기 지원을 요구하더라도, 현재 상황에서는 (지원이)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 정부 역시 같은 논리를 꺼낸 바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북한 역시 도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그 경우 대한민국에서는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등 여타 동맹국과도 머리를 맞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 유지는 한국은 물론 다른 동맹국들에도 중요한 이해관계다.
다른 고위 외교 당국자는 “미국이 요구하는 동맹의 역할 설정에 대해 일본과 이해관계가 같은 부분도 있을 수 있다”며 “입장이 다른 부분은 조율했다”고 밝혔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안보적 측면에서 북한 위협에 대응하고, 경제적 측면에서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부분에선 한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