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이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기대수명이 늘면 미래에 대비해 자산을 축적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설명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5일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가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2003~2023년 기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33.8% 포인트 증가했다. KDI는 이 중 28.6% 포인트가 기대수명 증가에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인구 구조적 요인이 가계부채 비율 증가 폭의 약 85%를 차지한 것이다.
KDI는 “기대수명 상승은 고령층의 금융자산 축적과 청년층의 주택 구매를 통한 차입 수요를 동시에 자극하며 부채를 증가시켰다”고 밝혔다. KDI에 따르면 가계는 기대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미래에 대비해 당장의 소비를 줄이고 자산을 축적하게 된다. 이때 연령대별로 자산 축적 방식이 다른데, 실물자산을 확보한 고령층은 자산 저축을 통해 이자를 받는 등 금융 자산을 중심으로 한다. 청장년층은 주택 구입 등 실물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고령층의 자산을 빌리게 되므로 가계부채가 발생하게 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기대수명이 1세 늘 때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4.6% 포인트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 청·장년층(25~44세) 인구 비중이 1% 포인트 감소하고 고령층(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 포인트 증가하면 가계부채 비율은 1.8% 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추계됐다.
다만 고령화로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수년 이내에 감소 국면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됐다. 부동산 등 실물자산 축적을 위해 대출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청년층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2070년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현재보다 27.6% 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국제금융협회(IIF) 통계 기준 지난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3%로, 스위스(125.8%) 호주(112.0%) 캐나다(100.4%) 네덜란드(91.9%)에 이어 세계 5위다.
KDI는 이러한 인구구조를 고려해 가계부채의 총량 등 가계부채 정책을 임의로 정하는 접근보다 임금체계 유연화 등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무·성과 중심의 유연한 임금체계 도입 등 노동시장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KDI는 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예외 조항을 점차 줄이는 등 가계부채 관련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김윤 기자 k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