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에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법 개정안) 가운데 방송법 개정안이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정부 때부터 ‘강대강’ 대치를 이어 온 여야의 ‘방송 전쟁’은 정권교체 후 더불어민주당의 강행 처리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여당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입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방송 장악 시도라고 맞서고 있어 향후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 과정에서 야당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표결로 강제 종료한 뒤 방송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쳤다. 개정안은 재석 의원 180명 가운데 찬성 178명으로 통과됐다.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은 항의 의미로 표결에 불참하고 본회의장을 떠났다.
민주당은 방송3법 중 두 번째 법안인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2차 필리버스터를 진행해 표결은 불발됐다. 7월 임시국회 회기가 이날 자정 끝나 본회의 산회와 함께 필리버스터도 종료됐다. 여당은 21일 열리는 8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다시 표결을 강행할 방침이다. 여당의 구상대로면 오는 24일 오후에는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 2차 상법 개정안이 모두 본회의를 통과하게 된다.
이날 처리된 방송법 개정안은 한국방송공사(KBS)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를 현행 11명에서 15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현행 11명의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관례상 여권 7명과 야권 4명으로 구성돼 왔다. 이에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컸다.
개정안은 이사회를 15명으로 확대하면서 국회 교섭단체(6명), 공사 시청자위원회(2명), 공사 임직원(3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2명), 변호사단체(2명) 등이 추천하도록 했다. 여당은 이사 추천권 다양화를 통해 KBS가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야권은 외부 단체 추천을 통해 결국 친여 성향 인사가 이사회를 장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방송법 개정안이 조만간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되면 KBS는 3개월 이내에 이사회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 새 이사회는 현 박장범 KBS 사장 교체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사장이 교체 시도에 반발하며 자리를 고수할 경우 법적 분쟁 가능성도 있다. 야당은 ‘언론 장악’ 프레임으로 맞설 것으로 보인다.
방송법 개정안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의 경우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복수의 사장 후보자를 이사회에 추천하도록 했다. 추천위는 전체 인구의 성별·연령별·지역별 분포를 고려해 100명 이상 위원으로 구성한다. 이사회는 특별다수제(5분의 3 이상 동의)와 결선투표제를 거쳐 사장을 임명한다.
보도전문 채널의 경우 사장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한 사람 가운데 이사회가 임명하도록 했다. 사장추천위는 방송사업자가 교섭 대표 노동조합과 합의해 구성한다.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도 도입된다. 방송사업자는 보도 분야 직원 과반수 동의를 얻어 보도책임자를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편성위원회 구성도 의무화된다.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 지상파, 종합편성채널에서는 노사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해 편성 규약 등 편성 관련 주요 사항을 심의하게 된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