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내가 사는 것은 사명 때문이다

입력 2025-08-06 03:07

모세는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120년을 살았다. 그런데 그는 눈이 흐리거나 기력이 쇠해지지 않았지만 세상을 떠났다. 사명 수행의 길이가 곧 수명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앞 요단강까지 인도하는 것이었다. 요단강을 건널 건강이 있었다. 요단 저쪽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고 나서 죽겠노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며 “너는 들어갈 수 없다”는 걸 확인하시고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하신다. 모세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지척에서 죽어야 했는가.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엄격하셔야 했다.

우리 생애는 사명 수행의 길이와 똑같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산다는 건 곧 사명을 위해서 산다는 뜻이 된다. 생명은 사명이다. 우리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일하게 하려고 보내셨다. 우리 주님도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 밝히셨다.

사명이란 말에는 전업과 직책 소명 직분 역할 등 여러 의미가 있다. 전업이란 것은 나만 전문적으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명은 내가 하는 이 일이 하나님께서 나를 지명해 불러 맡겨주셨다는 의미가 강하다. 직분이란 세상의 수많은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특별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분담과 역할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모자이크나 퍼즐같이 커다란 그림에서 내 위치는 바로 독자(獨自)다. 다른 것으로는 대체할 수 없다.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독자의 역할’,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직책이나 사명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주에서 나만의 것이요 온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명이란 것은 그 자체가 보람이요 감격이며 가치다. 희랍어로 사명이란 말은 ‘오토 테로스’다. 곧 그 자체가 목적이란 뜻이다. 사명을 가지고 다른 것을 이루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가령 내가 의사의 직업을 가졌다면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돌보아 낫게 하는 것이 보람이요 가치여야 한다. 법관에겐 옳고 그름을 가리고 판정하는 일, 그 자체가 목적이요 보상이다. 다른 목적이 있을 때는 파국이 온다.

국회는 입법을 담당하고 법률을 제정하는 곳이다. 사법은 법원이, 행정은 정부가 역할을 한다. 국회가 사법권까지 행사할 수는 없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사명론 중 표본이다. 고린도전서 12장의 지체론은 이런 의미에서 최고의 사명론 지침이다. 월권은 전체를 망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명은 다 하나님을 향한 사역이란 점이 중요하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수도원의 수녀나 부엌에서 일하는 어머니나 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란 말을 했다. 거기서부터 근대가 열렸다.

다 하나님을 위한 일인 것이다. 1918년 소설가 이광수는 목사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농부와 사무원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했다. 주일만 하나님의 날이 아니다. 월요일도 목요일도 다 하나님의 날이다. 1908년 봄 세브란스의학교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하며 감격한다.

세상에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게 없다. 누구나 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세계사의 한 부분을 맡아 수행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며 인생이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민경배 목사 (웨이크신학원 석좌교수)

◇민경배 웨이크신학원 석좌교수는 연세대 신과대학과 동 대학원, 영국 에버딘대 신학원과 런던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연세대 교수와 연합신학대학원장, 서울장신대 총장을 역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