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통계는 죄가 없다

입력 2025-08-06 00:40

조지 오웰의 작품 ‘1984’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정부 기록국 직원이다. 여기서 검열, 통계 조작 등을 담당한다. 정부는 1984년 4분기 구두 생산량을 1억4500만 켤레로 예상했지만 실제 생산량은 6200만 켤레였다. 윈스턴은 예상치를 5400만 켤레로 낮춰 목표가 초과 달성됐다고 믿게 했다. 오웰이 풍자한 사회주의권 통계는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체제 경쟁 탓에 실제 믿을 게 못 됐다. 소련은 1928~1985년 국민소득 증가율이 90배라고 발표했으나 6.5배에 그쳤다.

냉전이 끝났지만 통계 마사지 유혹은 여전하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경제 대국임에도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영향을 받은 때문일까. 31개 성(省)의 국내총생산(GDP) 합은 매번 국가 GDP를 뛰어넘는다. 2007년 리커창 랴오닝성 서기(전 총리)는 포럼 참석차 방문한 미국 경제 대표단에게 “중국 경제 통계에서 믿을 건 전력 소비량, 철도화물 운송량, 은행 융자액뿐”이라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2010년대 그리스 부채 위기는 재정 적자 수치 조작에서 시작됐다. 정확한 수치를 보고하려는 통계청장을 고소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등 일부 중남미 국가는 수시로 물가 상승률을 조작했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직전 3개월간 고용 상황이 기존 발표치보다 상당히 악화된 최종 통계치를 이달 초 공개하자 후폭풍이 거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정부에 의해 임명된 노동통계국장을 ‘일자리 숫자 조작’을 이유로 전격 해고했다. “이런 해고는 전례없는 일”이라는 각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중국에선 월간, 분기별, 연간 통계가 지난 5월 아예 사라졌다. 통계 조작을 넘어선 통계 실종 사건이다. 미·중이 치졸한 경쟁까지 펼치는 격이다.

혀를 찰 일이 아니다. 우리도 문재인정부 시절 소득격차가 10년 만에 가장 크게된 결과가 발표된 뒤 통계청장이 경질된 일이 있었다. 소득주도성장의 기대효과와 다른 게 이유로 지목됐다. 통계는 하나인데 해석은 정권 입맛대로다. 오웰이 하늘에서 “통계는 죄가 없다”고 외칠 듯 싶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