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브래드퍼드(64)는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미국관 대표로 뽑힌 흑인 작가였다. 그해 베니스에 취재 갔다가 이름을 처음 알게 됐다. 베니스비엔날레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건 알았지만 왜 유명한지는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가 한국에 왔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지난 1일 개막한 한국 첫 개인전 ‘마크 브래드포드: 킵 워킹’(‘계속 걸어’라는 뜻)에 맞춰 방한했다.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직접 만나면서 그 궁금증을 풀게 됐다. 자신의 작업을 ‘사회적 추상’이라고 명명하며 “미술사와 한바탕 싸움을 벌여 온 작업”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주류 미술사에 위치한 지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전시장에서도 큐레이터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마이크를 든 채 작품 한 점 한 점에 대해 설명했다. 흑인 미술가로서 그가 백인 중심 미국 예술계에 우뚝 서게 된 게 아주 당연해 보였다.
2m가 넘는 아주 ‘긴’ 키, 검은 셔츠 차림의 스마트한 외모가 인상적이었지만, 그는 미국 사회 주변부 출신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산타모니카에서 자랐다. 엄마가 싱글맘으로서 억척스럽게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시간을 죽였다. 제법 커서는 엄마를 도와 손님 커트를 하고 파마 종이를 말았다. 청소년 시절의 경험은 훗날 미술가가 된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자산이 됐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HIV바이러스(에이즈)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들은 곳도 그곳이었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10년간 유럽 여러 도시를 돌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미술관과 나이트클럽을 동시에 전전하던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1세에 돌연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 입학하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브래드퍼드는 미국 추상 회화의 역사 위에 자신을 위치시키고자 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잭슨 폴록 등이 뉴욕에서 주도한 추상표현주의에 대해 “(백인) 작가들이 여성과 유색인종을 배제한 채 만들어낸 카우보이 같은 모더니즘 미술”이라고 비판했다.
흑인 미용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늦깎이 예술가는 어떻게 백인 남성 중심의 미국 추상화 전통에 균열을 냈을까. 해답은 바로 미용실에서 파마를 할 때 쓰는 얇은 반투명 파마지(엔드페이퍼)였다. 그는 캔버스에 추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대신 캔버스에 그 파마지를 물감마냥 붙였다. 파마지는 인종적으로 유색인종, 계층적으로 하위계층을 상징하고, 동시에 미용실에 모인 흑인 여성들의 수다의 기억이 새겨진 사회적 기호이기도 했다. 그 파마지에 작가는 염색약과 안료를 혼합해 채색하기도 했다. 2001년 뉴욕에서 가진 첫 미술관 개인전에서 이 파마지 캔버스 추상 작업을 선보이며 그는 미국 미술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작가는 이처럼 거리에서 수집한 포스터, 전단지, 폐지와 같은 일상의 흔적을 지닌 재료를 캔버스에 붙여서 추상 작업을 한다. 구체적으로 대상을 그리지 않은 추상임에도 그 안에 사회적, 인종적, 계층적 역사와 흔적을 담고 있기에 ‘사회적 추상’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회화, 영상, 설치 작업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초기 작업부터 신작 시리즈 ‘폭풍이 몰려온다’까지 40여점을 선보인다. ‘폭풍이 몰려온다’는 2005년 미국 남부를 덮친 허리케인과 카트리나를 연구하며 폭풍이라는 자연재난과 미국 최초의 드래그 퀸으로 알려진 윌리엄 도어시 스완을 병치시키며 사회 변두리에 놓인 소수자들의 삶을 함께 이야기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부상하며 ‘흑인 작가’라는 정체성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저 같은 사람이 추상미술가가 되는 건 쉽지 않았다”면서 “특히 내가 데뷔한 2000년대에는 미국에 개념미술이 득세했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개념미술의 노동구조였다. 개념미술은 작가가 아이디어(개념)를 제시하면 지시받은 대로 노동자들이 작품을 만든다. 개념을 제시하는 작가는 백인이며, 작업을 하는 노동자는 유색 인종인 개념미술 제작 현실에 그는 반기를 들었다. 개념적인 것(정신적인 것)과 노동하는 것(육체적인 것)이 분리돼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는 거의 모든 작업을 손수한다.
이번 한국 개인전 하이라이트는 전시장 입구에 일출의 바다처럼 펼쳐진 추상 작업이다. ‘떠오르다’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가까이 가서 보면 캔버스 천을 잘라 띠처럼 만들고, 그 위에 길거리에서 주운 종이를 캔버스에 물감처럼 발라서 완성한 것이다. 1년이 걸렸다. 수천 개의 띠와 띠는 노끈으로 묶이거나 스테이플러가 찍혀 거대한 추상의 바다가 됐다. 그렇게 800㎡(약 250평) 넓은 공간에 펼쳐진 추상 작품 위를 걸으면서 관람객은 재료 속에 담긴 사회적 기억을 상상하고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백인 남성 중산층이 주도해 온 미국 추상미술의 전통에 도전하며 미술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그는 2019년 노벨상급 권위를 갖는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됐고, 2021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이 됐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