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 마침내 새 후원자 찾았다

입력 2025-08-06 00:12
추수의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 설치 전경.

8년간 비어 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울박스’가 마침내 새 후원자를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은 LG전자와 중장기 파트너십을 맺고 LG올레드 시리즈 첫 작가로 선정된 디지털 세대 여성 작가 추수(33)의 작업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을 최근 공개했다.

서울박스는 지하 3층~지상 3층을 통째로 터서 하나의 공간(23x23x17m)으로 만든 곳이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전시장이다. 2013년 개관 이후 한진해운(대한항공)의 후원을 받았지만 2016년 4회를 끝으로 종료됐다.

추수의 작업은 해조류 성분인 우뭇가사리(한천, 영어로 agar)에 이끼를 심어 만든 조각 설치 작품 ‘아가몬 5’와 올레드 디스플레이 44개를 층층이 쌓은 2채널 초대형 영상 작품 ‘살의 여덟 정령-태’ ‘살의 여덟 정령-간’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아가몬 5’에 대해 아이를 낳지 않고도 엄마가 되고 싶은 욕망을 구현한 것이라 했다. 우뭇가사리에 심은 이끼가 물, 온도, 조명 장치 덕분에 조금씩 자란다. 영상에 보이는 기괴한 형체의 디지털 정령은 정상성, 퀴어, 여성성을 상징한다. 미술관 측은 “예술과 기술, 공간의 세 축이 교차하는 장”이라고 소개했다.

‘아가몬’.

과연 그럴까. 전시장은 층고가 17m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인 반면 주인공 조각인 아가몬은 길이가 고작 18㎝라 존재감이 미약하다. 또 몸체인 우뭇가사리는 그대로인 채 머리카락처럼 심은 이끼만 자란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해조류를 사용해 조형물 자체가 자라는 작품이 나오는 마당이다. 이끼만 자라는 이 작품을 두고 예술과 기술의 결합이라고 하는 수식어는 과해 보인다. 또 창을 통해 외부의 종친부 건물이 훤히 보이는 공간이라 영상 작업은 관객이 집중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동안 이 공간을 꾸민 작가들이 공간을 꽉 채우거나(서도호), 바닥을 검게 만들거나(레안드로 에를리치), 디지털 폭포 같은 수직적 작업(율리어스 포프)을 선보인 것은 공간의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일 테다.

LG전자는 후원하되 자사 디스플레이를 사용한 영상 작업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글·사진=손영옥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