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물 같은 공동체, 다음세대를 길어내다

입력 2025-08-06 03:05
매주 일요일 인천 동암교회 성도들을 위해 국수 만들기에 나서는 장로 12명이 교회 식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암교회 제공

인천 부평구 십정동. 지금은 수많은 아파트 단지와 학교, 시장이 들어선 도심의 일상이 흐르는 곳이지만, 이곳 지명엔 오래전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구한말 시절 이 마을에 열 개의 우물이 있어 ‘십정(十井)’이라 불렸다. 그중 가장 큰 우물에선 한겨울에도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따뜻한 물이 솟아 마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녹였다고 전해진다. 이곳엔 생명 같은 물을 함께 긷고 사람들이 빨래터에 모이던 때처럼 여전히 따뜻한 생명력을 여전히 품고 있는 교회가 있었다.

다음세대에 진심인 공동체


‘다음세대를 세우고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교회.’ 인천 동암교회(문형희 목사)가 내건 이 표어는 지난 10년간 이어온 사역의 방향성이자 실천의 이정표다. 1970년 설립 후 성경적 본질과 기도로 공동체를 다져온 김종열 원로목사의 목양을 이어받아 2015년 부임한 문형희(56·사진) 목사가 접목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최근 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문 목사는 벽에 걸린 사진들부터 소개했다. 하나의 팀처럼 옷을 맞춰 입은 열세 사람이 화목한 가족처럼 하나같이 환한 미소를 띤 사진들이었다.

“마치 13형제 같지요?(웃음) 지금의 동암교회가 있게 해 준 사랑하는 열두 장로님들입니다.” 문 목사는 사진을 소개하며 10년 전 부임 직후 시작했던 제자훈련 이야기를 꺼냈다. “성도들을 건강하게 목양하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가 ‘목회 철학’을 공유하는 겁니다. 장로님들께 주일 오후마다 3시간씩 제자훈련을 하자고 권면했는데 한 분도 빠짐없이 동의를 해주셨어요. 그렇게 함께하다 보니 가족보다 더 친밀한 관계가 되더군요.”

교회 식당 셰프가 되는 열두 장로

제자훈련은 전 교역자와 성도들에게 확장됐다. 훈련을 통해 새겨진 목회 철학은 자연스레 견고한 푯대가 있는 공동체를 이루게 했다. 문 목사는 “중심 철학을 뿌리내리게 하는 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라며 “리더인 장로님들부터 헌신하는 마음으로 실천에 나서자 자연스레 성도들도 그 모습을 닮아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매 주일 점심시간, 전 교인이 식당에 둘러앉아 따뜻한 국수를 나누는 풍경이 펼쳐진다. 1부 예배(오전 7시)를 마친 뒤 예배당을 나선 열두 장로는 교회 식당으로 이동해 ‘열두 셰프’가 된다.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뒤 저마다 맡겨진 자리에서 국수 만들기에 나선다.

심복기(70) 선임장로는 “날이 더울 땐 등줄기에 땀이 멈추지 않을 정도지만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성도들이 맛있게 국수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고된 준비과정마저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다음세대는 미래 아닌 오늘의 중심

교회에선 특히 다음세대를 오늘의 교회 중심으로 세우려는 시도가 계속된다. 문 목사는 해마다 8월 한 달간 주일예배 강단을 내려와 교회 교육위원회와 함께 주일학교 예배를 드린다. 교사들과 직접 만나 의견을 듣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확인한 뒤 ‘비전 캐스팅’이란 이름의 리스트를 작성해 우선적으로 사역에 반영한다. 문 목사가 보여 준 비전 캐스팅 목록엔 ‘비전센터 어린이 놀이공간 활성화’ ‘실명제 동암 청원함 설치’ ‘주일학교 냉난방 시설 보완’ 등 97개에 달하는 내용과 시행현황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런 경청과 실천은 청년과 교사들, 젊은 부부 성도들의 공감을 이끌었고 교회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다음세대를 세워가는 방향으로 정렬됐다. 청년1부장을 맡은 김인석(50) 집사는 “성도로서 교회 사역에 동참하다 보면 다음세대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다”며 웃었다. 자녀 양육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엔 무관심한 채 ‘N포 세대’에게 결혼만 부추기는 세태 속에서 지역 교회가 어떤 방향성을 고민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 목사는 “다음세대의 신앙은 부모와 교회 공동체의 신앙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연중 다섯째 주일이 있는 달마다 전세대 연합예배를 드리는 이유다. 영유아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한목소리로 예배하고 같은 말씀을 나눈다.

동암교회 여름 영어캠프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지난해 8월 수업을 마친 뒤 즐거운 표정으로 찍은 기념사진. 동암교회 제공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매년 7월 여는 ‘동암 워터파크’나 영어캠프 등은 지역 맘카페에서 회자되는 인기 프로그램들이다. 영어 강의에 달란트를 가진 성도들을 강사로 구성해 수준 높은 영어교실, 총신대 영어교육과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방학 영어캠프는 미리 수강 신청을 준비해야 할 정도다.

“청년 성도, 사역의 도구가 아닙니다”

문 목사가 부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메시지 중 하나는 ‘청년부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청년부 예배를 정식 주일 예배(4부)로 승격시키고 담임목사인 자신이 직접 설교자로 나섰다. 또 전담 교역자들이 청년들과 함께 제자훈련과 목양을 담당하며 동반 성장을 꾀했다.

그동안 청년부 성도들은 신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젊은 부부가 됐다. 그들이 떠나지 않고 교회 안에 정착할 수 있었던 데는 교회의 유기적인 돌봄 시스템이 있다. 신혼부부로 구성된 ‘허니 브리지’, 성경적 태교 교실, 매년 성탄절에 열리는 ‘신혼부부 만찬(banquet)’까지 인생의 시기마다 꼭 필요한 신앙의 언어를 건네는 구조다. 이 과정을 거친 젊은 부부들은 다시 교회의 사역을 자발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로 성장하고 있다.

“예배와 교제, 훈련과 사역, 선교라는 복음의 핵심 가치를 다음세대와 그 다음세대에게 계승해야지요. 동암교회가 앞으로도 건강한 성장 모델, 다음세대 사역의 모델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겁니다(웃음).”


인천=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