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옮겨라, 약값 내려라… 트럼프의 불주사

입력 2025-08-06 00:07
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 내 생산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제약사들에게 약가 인하 또한 압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중적인 정책 기조에 대한 혼란이 커지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도 생산 거점 재편과 수출 전략 수정 등 복잡한 셈법에 돌입한 모습이다.

5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영국계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달 미국 내 제조 및 연구·개발(R&D) 인프라 구축을 위해 500억 달러(약 69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2030년까지 800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이 중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벌어들이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로슈는 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내놨다. 존슨앤드존슨도 수십억 달러 수준의 미국 내 제조시설 확충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노바티스와 일라이 릴리도 200억 달러대의 투자를 통해 제조 및 R&D 시설 신·증설에 나서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바이오 정책 기조는 미국 내 리쇼어링(생산시설의 국내 이전)을 유도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약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정이라는 부작용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미국 내 의약품 가격을 해외 주요국 수준으로 낮추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미국제약협회(PhRMA)는 “외국의 약가 통제를 미국에 도입하는 것은 혁신 생태계를 위협하며, 미국의 선도적 입지를 약화시키고 환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주요 교역국 대상 무관세가 적용되던 의약품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서 약가 인상이나 공급망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특히 미국에서 유통되는 처방약의 90% 이상이 제네릭 의약품이며 그 대부분이 중국·인도 등 해외 생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국 내 투자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약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투자 유인과 가격 통제를 동시에 강요하는 모순된 정책”이라며 “업계 전반에 정책 신호의 혼선만 가중시키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도 미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맞춰 대응 전략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셀트리온은 미국 내 생산 공장 인수, 현지 위탁생산(CMO) 확대, 재고 확보 등을 통해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보를 포함한 다양한 전략 옵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미국이 한국산 의약품에 대해 최혜국 대우(관세율 15% 상한)를 적용 원칙을 밝히면서 한숨은 돌렸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은 크다”며 “미 정부의 약가 인하 추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국내 바이오시밀러·CDMO(위탁개발생산) 기업들이 향후 관세 협상에서 베네핏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