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가 중국산 저가 철강재를 겨냥한 반덤핑 제소에 속속 나서고 있다. 중국산 철강의 저가 물량 공세, 미국의 고율관세 등 이중고 속에서 생존을 위한 내수시장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국회는 국내 철강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일명 ‘K스틸법’을 발의하며 측면 지원에 나섰다.
세아베스틸·세아창원특수강은 4일 중국산 특수강 봉강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신청했다고 밝혔다. 특수강 봉강은 일반 철강 대비 고도화·경량화 특성을 가진 철강재로 첨단부품이나 안전 관련 분야에 적용되는 소재다.
이들 업체는 “중국산 특수강 봉강의 무분별한 국내 유입으로 인해 산업이 위협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특수강 봉강 수입량 약 75만t 중 중국산이 약 67만t으로 92%에 달한다.
그간 국내 철강사들은 중국산 철강재의 저가 물량 공세에 몸살을 앓았다. 중국 업체들이 내수 침체로 현지에 쌓인 재고를 헐값에 떨이 판매하는 일이 이어지면서 저가 수입 물량이 급증했고 이로 인해 단가가 떨어져 수익성도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기업들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정부에 요청하는 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앞서 현대제철은 중국산 후판과 일본·중국산 열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제기한 바 있다. 무역위는 지난 2월 중국산 후판에 대해 최고 38.02%의 잠정 관세를 매겼다. 지난달 24일에는 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한 잠정 반덤핑 관세를 28.16~33.57%로 부과하기로 했다.
다른 국가들도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 4월 한국산 일부 아연도금강판 제품에 최대 15.67%의 반덤핑 관세를 임시 부과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달 한국, 중국, 베트남산 일부 철강 제품에 대해 최대 57.9%의 잠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이러한 움직임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간 지속된 덤핑 수입으로 가격경쟁력이 무너진 데다 미국의 고율관세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국씨엠은 중국산 도금·컬러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여야 의원 100여명은 이날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 철강 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가칭 K스틸법)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 설치, 세제·재정 지원 확대, 일자리 및 국내 생산거점 유지 인센티브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업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국철강협회는 “철강산업에 대한 정책 지원이 단기적 대응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비전과 연계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회, 정부, 철강업계와 소통해 적극 협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