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이 자동차업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보험으로 자동차를 수리할 경우 정품이 아닌 대체 부품(품질인증 부품)을 우선 사용한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명분은 보험료를 낮추고 중소 부품사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여론은 소비자 선택권을 축소하는 개악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품질인증 부품 강제 적용 자동차보험 약관 개정 반대에 관한 청원’이 올라와 있다. 오는 16일 시행하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을 철회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날 기준 1만6000명 넘는 동의를 얻었다. 대체 부품은 정품 제조사가 아닌 일반 부품사가 제작한 뒤 품질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인증은 국토교통부 지정 기관인 한국자동차부품협회(KAPA)가 실시한다.
대체 부품은 순정 부품보다 통상 30~40% 저렴하다. 바뀐 약관을 적용하면 수리비가 내려가기 때문에 보험료를 인하할 여지가 생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물배상 수리비는 약 4조3000억원이었다. 부품비 비중이 48.2%에 달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비중이 늘면서 수리비가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비상 제동 장치 등 첨단 부품이 많아질수록 부품 가격 총액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등 일부 부품 제조사의 독점 구조를 깨고 일부 중소 부품사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도 개정안의 취지 중 하나다.
보험사와 부품사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운전자 권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보험으로 자동차를 수리할 때 순정 부품을 사용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기존엔 기본적으로 순정 부품으로 수리하고, 운전자가 대체 부품을 사용할 경우 일부 환급해주는 특약이 있었다. 현대자동차·기아를 비롯해 대부분 완성차업체는 순정이 아닌 부품은 ‘보증 수리 대상’에서 제외한다. 리콜 서비스를 받을 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대체 부품을 쓴 차량은 중고차 시장에서도 제값 받기가 어려워진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거다. 대체 부품에 관한 정보는 제한돼 있다. 보험개발원은 대체 부품의 안전성 평가 결과 ‘우수’ 등급을 받았다는 결과를 공개했지만, 소비자 불신은 여전하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서비스센터에 가면 순정 부품이 아니라서 책임지지 않겠다는 정비사가 수두룩하다. 겉보기에 똑같아도 미묘한 차이가 결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산 저가 부품이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KAPA는 “국산차 대체 부품은 한국 자동차 제조사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부품을 생산한 경험이 있는 한국 업체에서 전량 생산한다. 수입차의 경우 미국과 유럽의 공신력 있는 인증을 받은 제품만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할 경우 소비자 반발만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관련 학과 대학교수는 “안전을 담보로 비용을 낮춘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며 “보험 가입 시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등 대체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