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 기술병 티머시 샌더스는 지난해 5월 핵추진 잠수함 USS 헬레나에서 감전 사고로 숨졌다. 다른 작업자가 정비 후 전원장치를 제대로 덮지 않아 발생한 비극적 사고였다. 샌더스는 평소 어머니에게 “부실한 정비작업 때문에 누군가 다칠 것 같다”고 수차례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헬레나는 6년간 지연된 수리를 마치고 출항할 예정이었지만 사고로 일정이 다시 늦춰졌다. 기초적 정비 실수로 젊은 수병이 숨지고 잠수함 실전배치도 지연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미국이 함정을 제때 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사례”며 “미 해양산업 전반이 쇠퇴한 결과”라고 짚었다.
미 조선업의 침체는 냉전 종식 후 공공투자가 줄어든 탓으로 분석된다.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지연이 전력 운용 차질로 이어진다는 우려도 크다. 한국 정부와 조선업계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통해 미 해군과 MRO 부문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1980년대 후반 미 해군은 약 600척의 함선을 보유했지만 현재 295척으로 절반 이하가 됐다. 미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군 구축함의 수리 지연 기간은 총 2633일에 달한다. 가용 함정이 줄어들고 정비 기간마저 길어져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WSJ는 전했다. USS 보이시 잠수함은 2015년 작전에서 배제돼 12억 달러(1조6600억원)를 들여 정비 중이고, 2029년에나 다시 임무에 투입될 예정이다.
1986년 진수된 헬레나 역시 최근 수년간 수리를 위해 부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2010년 미 해군이 항공모함 수리를 우선순위로 두면서 잠수함 수리는 뒤로 밀렸다. 헬레나는 2016년 미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로 이동했지만 수리를 마치지 못했다. 지난해 해군에서 추가 수리를 진행하던 중 샌더스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헬레나는 사고 조사가 마무리된 뒤 지난달 퇴역했다. 허드슨연구소의 브라이언 클라크는 “긴 정비와 보수가 결국 시간과 돈 낭비로 끝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숙련 인력과 드라이독(물 밖에서 선박을 수리하는 시설) 부족, 노후 설비가 주요 문제로 꼽힌다. 1990년대 미국은 함정을 정비하는 공공조선소 수를 절반으로 줄였고, 남은 공공조선소는 100년 전 설립된 4곳뿐이다. 미 조선소 용접공 수입은 패스트푸드 직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많은 숙련공이 이탈하고 있다고 미 의회예산국은 분석했다.
한국은 지난달 30일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서 150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미 조선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12월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지난달까지 총 3건의 미 해군 함정 MRO 계약을 수주했다. 마스가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조선사들의 미국 조선소 인수와 인력 양성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