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고정희 (13) 조선인 할머니의 저녁 초대… 우리 민족 음식들로 가득

입력 2025-08-06 03:05
고정희 선교사의 남편 이성로(오른쪽) 목사가 2018년 일본 오사카 후쿠시마의 조선학교를 방문한 선교단체 팀원 등과 함께 한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을 무릎에 앉히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고 선교사 제공

두 재일조선인 할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감사하다며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예의를 갖춰 수락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쉬는데 두려움이 찾아왔다. ‘정말 가도 될까.’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정답을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걸음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도요타 시내에 있는 2층 단독주택이었다.

나는 그날 거실에 들어서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다. 미역국 잡채 불고기 나물 등 상 위에는 우리 민족의 음식들로 가득했다. 대략 30명이나 되는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 손님이 온다고 해서 할머니 가족과 언니 할머니 가족,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 딸, 사위, 손자들까지 모두 온 것이다. 집 안엔 ‘조선신보’ 같은 언론지도 보였다. 나중에야 나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집단적일 수 있었는지 이해했지만, 당시엔 ‘뭔가 잘못되거나 휘말리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먹고 있는 음식의 맛을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감히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못 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친절하고 밝았다. TV에서만 보던 한국 사람을 직접 만난다는 기쁨이 컸던 것이었다. 재일 조선인들의 삶에 들어가고 나서야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 궁금했던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때만 해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일본 TV를 통해 본 한국 드라마처럼 진짜 한국이 그런지 우리 부부에게 확인하면서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간이 지나 우리 부부는 “슬슬 갈까”라고 말하며 일어서려 했다. 그러자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또 한참 이야기하게 됐다. “이제는 정말 가야겠다”라고 일어서는데 그 많은 가족이 모두 일어나더니 우르르 몰려나와 우리 부부를 환송해줬다. 이 기억은 지금까지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할머니는 직접 쑥을 뜯어 만들었다며 쑥 인절미를 선물로 주셨다. 일본에서는 쑥을 잘 안 먹기 때문에 귀한 떡이다.

‘아, 우리처럼 쑥을 먹는 우리 민족이었구나.’ 이들은 그저 한국인을 만나 밥 한 끼 먹으며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었는데 우리가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때 조금 더 웃고 편하게 그 순간을 누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 냉동해 둔 쑥떡을 하나씩 먹을 때마다 그들에게 죄송했다.

그날 긴장을 많이 한 건 사실이었다. 집에 도착한 뒤 여전히 남은 두려움 저편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이들에게 구원을 이루어 가실지 슬며시 설렘이 찾아왔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