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결혼을 하루 앞두고 영순(허진)은 남자친구 학수(정인기)의 부고를 듣는다. 학수가 세상을 떠났고, 내일이면 벌써 49일째가 되는 날이라는 학수 아들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영순은 허탈감을 안고 일상을 이어간다. 친구의 위로에도 담담히 답한다. “난 이승 친구보다 저승 친구가 더 많아.”
남편 병시중과 집안일에 지친 영순에게 학수는 설렘이자 활력이고 사랑이었다. 콜라텍에서 함께 춤을 출 땐 즐거웠고 그의 손길이 닿으면 가슴 떨렸다. 학수로 인해 ‘나는 어떤 여자일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영순은 결국 손녀 결혼식에 가는 대신, 학수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가기로 한다.
노년 여성의 취향과 욕망을 생생하게 그려낸 단편영화 ‘첫여름’(사진)은 허가영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41기 졸업 작품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 영화를 심사하는 ‘라 시네프’ 부문 1등상을 거머쥐었다. 한국영화가 이 부문에서 수상한 건 최초다.
오는 6일 메가박스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지난달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허 감독은 “영순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는 여자”라며 “영순의 찬란한 시절과 충만하고 쨍한 여름을 되찾아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외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허 감독은 “흔히 노인의 욕망은 납작하게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노인도 청년과 같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며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할머니 아닌 여자로서의 영순과 동행했다고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러닝타임 31분, 관람료 3000원, 15세 관람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