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노인은 아프고 가난하다. 264만명에 달하는 국내 장애인 중 65세 이상 노인 비중이 처음으로 절반(54.3%)을 넘어섰다.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빈곤층 대상 복지제도인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내 노인 비중도 늘고 있다. 지난해 267만명이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받았는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3%가 65세 이상이었다. 외롭기도 하다. 노인 10가구 중 셋은 독거가구이고, 65세 이상 자살률은 15~64세보다 배 가까이 높다.
올해 대한민국 노인은 사상 처음 1000만명을 돌파했다. 전체 5000만 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여생이 고단한 노인들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인구 구조가 된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돌봄이다. 하지만 부모 봉양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손주 양육을 부탁하거나 돈 빌려 달라는 자식만 없어도 살 것 같다는 노인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노인 돌봄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한정된 복지 재원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인 만큼 정부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제도(돌봄통합지원)가 그것이다. 돌봄통합지원은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통합 관리해 ‘지역사회 계속 거주’(AIP·Aging In Place)를 꾀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여기저기 흩어진 복지 서비스를 한 바구니에 담아 노인과 장애인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편하게 꺼내 쓸 수 있게 하는 개념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이름에도 들어 있듯 ‘통합’이다. 정부는 그동안 원스톱 복지를 강조해 왔지만 수용자 관점에서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병원 진료는 건강보험공단이, 요양은 장기요양보험이, 기초생활수급은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따로 맡는 식이다. 노인 돌봄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내에서조차 보건과 복지 업무에서 분절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서 운영하는 통합돌봄시스템은 향후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광주시는 지원 대상의 상황과 필요도에 따라 ①기존 돌봄 제도 ②틈새 메우는 7대 서비스 ③긴급돌봄 지원 연계의 3중 돌봄 망을 구축하고 있다. 돌봄콜(1660-2642)을 단일 창구로 접근을 간소화했고, 75세 이상 노인을 전수조사하고 의무 방문을 시행하고 있다. 내년 3월 당장 모든 지자체가 광주시처럼 수준을 맞출 순 없겠지만 중앙정부에서 지자체 특성에 맞는 노인 돌봄 시스템을 제시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통합’ 돌봄을 기대할 수 있다.
노인 돌봄의 또 다른 중요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다. 언뜻 AI와 돌봄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사람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돌봄 분야에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건 AI뿐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가장 힘든 것은 화장실 가는 일이라고 한다. 일반인에게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그들에게 화장실 낮은 문턱 하나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AI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홈’ 시스템이나 도움로봇은 24시간 상주하는 훌륭한 요양사가 될 수 있다. 이번 정부에서 신설된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실에서 소버린 AI 개발 같은 거대담론도 중요하겠지만 돌봄이 절실한 수백만명의 노인을 위한 AI 기술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좋을 것 같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에서 아이를 노인으로 바꿔야 하는 시대가 왔다. 정부의 통합돌봄 지원사업이 성공리에 안착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현재의 평서형 문장이 반어의 의미를 담은 의문형으로 바뀌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이성규 사회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