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사모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단순하면서도 절실한 질문이었다. 목회자 아내인 사모를 위로하기 위해 1998년 7월 문을 연 상담 전화 ‘사모사랑센터(사모랑)’의 시작점이다.
27년간 사모 2500여명이 전화 수화기 너머로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다른 사모에게 지친 마음을 털어놓았다. 6대 사모랑 회장인 권정이(65·안산광림교회) 사모는 “사모가 먼저 치유돼야 다른 이도 돌볼 수 있다는 깨달음이 이 사역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사모의 마음 응급 콜센터 ‘사모랑’
최근 기자가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의 사모의 전화 사모랑에는 1㎡ 남짓한 작은 전화 부스가 전부였다. 언제 울릴지 모를 벨 소리를 기다리던 안미경(57·영등포중앙교회) 사모는 이날 오후 4시쯤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이어지는 긴 침묵과 흐느낌…. 귀 기울이던 안 사모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사모님 용기 내어 전화해주셔서 고마워요. 많이 힘드셨죠. 어떤 일로 힘드신지 천천히 이야기해주실래요?”
상담 전화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원봉사자이자 전문 상담가인 사모 17명이 돌아가며 사모들의 전화를 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상담 전화를 건 사모에겐 나이 외 어떤 신상도 묻지 않는다.
사모랑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상담 내용은 부부 갈등이라고 했다. 자녀 문제, 정체성 혼란, 경제적 어려움, 성도와의 갈등이 그 뒤를 이었다. 사모랑 실장인 이애선(60·의정부동광교회) 사모는 “목회자 부부는 성도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가까운 이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기 어렵다”며 “그렇기에 편안하고 안전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곳을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오랜 운영된 만큼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도 많다. 안 사모는 “딸이 교회에서 성추행을 당했는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아이 상태가 악화하고 사모도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는 사연에 함께 울었다”고 했다. 이어 “또 다른 문제로 전화를 해온 사모가 한 시간 정도 속마음을 털어놓은 뒤 ‘아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다’고 말해 함께 웃은 순간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아카데미 통해 또 다른 사모 ‘돌봄’
“사모님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짧지만 진심 어린 이 한마디는 사모를 가장 위로했던 말로 꼽힌다. 사모랑은 사모들에게 일차적으로 감정의 응급처치 역할을 하고 있다.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의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나 전문가 상담으로 연계해 돕는다. 권 사모는 “사역의 중요성에 공감한 27개 교회와 8명의 사모가 후원에 참여해 최대 4회기까지 외부 상담비를 지원한다”며 “상담사의 수퍼비전, 봄가을 세미나, 사모 아카데미 수련회 등 다양한 사역을 통해 사모들이 서로 돌보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안 사모는 “누군가는 이런 상담 창구가 있는 줄도 모른 채 홀로 병들어갈 수 있기에 전화 받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며 “사모랑 사역이 더 알려져 더 많은 사모의 마음을 돌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모랑은 상담 교육을 통해 자원봉사 상담사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2019년부터 ‘사모 상담학교’를 ‘사모 아카데미’로 개편해 봄·가을에는 주제별 세미나를, 겨울에는 3박 4일 수련회를 열어 영성 교육과 자기 계발,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한다. 이 사모는 “사모들이 정서적 돌봄을 통해 스스로 ‘나다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사모들이 먼저 회복해야 지치고 외로운 또 다른 사모와 성도를 돌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모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사모랑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감독회장 김정석 목사) 사모를 중심으로 1990년대 말 태동했다. 권 사모는 “그 당시 상담의 중요성이 커지고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故) 안석모 교수님을 중심으로 사모들에게 상담 교육을 했다”며 “사모를 통해 성도를 돌본다는 기대와 목표로 출발했는데, 정작 더 깊은 상처를 지닌 건 사모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사모 100여명이 ‘사모는 사모가 돌봐야 한다’는 뜻을 모아 교단에 상담 교육을 요청했다. 1997년 ‘사모상담학교’를 열고 다양한 상담 과정을 여름과 겨울 학기로 나눠 진행했다. 이듬해 상담 교육을 받은 사모들은 ‘사모의 전화’를 개설하고 상담 봉사자로 나섰다. ‘365일 사모로 사오(3545)’라는 의미를 담아 정한 상담번호(02-365-3545)를 여전히 쓰고 있다.
2015년 기감 공식 기관으로 인준받았고 교단을 넘어 사모가 사모를 교육하고 훈련해 또 다른 사모를 돌보는 초교파 사역으로 성장했다. 안 사모는 “교회 안에 갇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모들이 너무 많고, 그런 절박한 이야기를 누군가는 들어줘야 한다”며 “사모 상담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같은 사모로서 어려움과 고통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단절과 고립에서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