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청계천을 따라 이어진 거리의 끝자락. 골목과 인도, 심지어 차도 일부까지 좌판이 빽빽하게 들어선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큰 자연발생형 벼룩시장이다. 바로 동묘벼룩시장.
지난 3일 찾은 시장은 주말답게 사람으로 북적였다. 누구에게는 낡은 잡동사니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흘러간 시간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보물이 숨 쉬는 공간이다.
최근 들어 SNS 덕분에 동묘벼룩시장은 ‘힙한’ 성지로 불린다. 오래된 패션 아이템이나 레트로 소품을 찾는 젊은이에게 값싸고 확실한 ‘빈티지 채굴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쇼핑이라기보다 ‘탐험’에 가까운 이 시장은 발길 닿는 곳마다 우연한 만남을 선사한다. 좁고 복잡한 좌판 사이를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옛날 가요가 흐르고 또 다른 곳에서 고물 라디오를 두드리는 손이 보인다.
물건뿐 아니라 좌판을 지키고 있는 이들의 세월도 녹아 있다. 때 묻은 장갑을 낀 상인의 손끝, 이익은 작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시장 구석구석에 쌓여 있다.
좌판 앞에는 쪼그려 앉아 물건을 고르는 손님과 상인의 흥정이 오간다.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들여다보는 젊은 여성, 구제 의류를 고르는 외국인 가족,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웃음을 터뜨리는 유튜버까지 고객의 면면도 다양하다. 모두의 얼굴에는 ‘보물찾기’에 나선 듯한 기대와 긴장, 설렘이 가득하다.
동묘벼룩시장에는 구제 의류부터 헌책, 레코드판, 공구, 오래된 가전제품, 디지털카메라, 쓰다 남은 화장품까지 없는 게 없다. 낡은 전자기기와 군용 배낭, 고장 난 라디오, 무늬가 바랜 도자기. 먼지를 뒤집어쓴 물건조차 이곳에선 세월의 흔적이자 품격으로 통한다. 최신 유행과 거리가 멀지만 낡고 투박함이 매력을 발산한다.
주말에 동묘벼룩시장을 찾은 김영수씨(56·돈암동)는 “이곳에서 옛날 교과서를 샀는데 잊고 있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어요. 시장이지만 박물관 같고 물건을 사는 동시에 시간을 사는 기분이에요”라며 웃었다.
동묘벼룩시장에서는 오늘도 과거가 현재와 끊임없이 만나고 있다. 지갑은 가볍지만 각자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고 마음에는 오래된 기억 하나가 새로 담긴다.
사진·글=이병주 선임기자 ds5ec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