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실용시대 역행하는 알뜰주유소의 그림자

입력 2025-08-05 00:35

최근 출범한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를 국정 철학으로 내세우며 시장의 활력 제고와 성장을 통한 민생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는 ‘재생에너지 대전환’을 예고하며 기후위기 대응과 미래 산업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에너지 시장의 방향 속에서도 우리나라 석유시장에는 여전히 10여년 전 고유가 시대 유산인 ‘알뜰주유소’ 정책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정부가 직접 민간시장에 개입한 이 정책이 과연 실용과 대전환이라는 새 정부의 가치와 부합하는지 이제는 냉철하게 평가할 때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정부의 알뜰주유소는 저가의 석유제품 공급, 석유 외 수익 다변화, 종합 에너지 판매, 사회 공헌 등을 목표로 내세웠다. 정부 지원으로 출범 초기부터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확대해 나갔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약 1270곳으로 늘어 전체 주유소의 약 10%, 판매량으로는 시장의 약 20%를 넘어섰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시장을 확대해 온 것이다. 원동력은 정부가 공언한 바와 같이 낮은 가격의 석유제품이다. 당연히 소비자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성과가 과연 지속 가능한 발전과 시장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알뜰주유소의 가격경쟁력은 수익 다변화도, 종합 에너지 판매도 아닌 단순히 낮은 원가에 기인한다. 한국석유공사나 농협이 정유사로부터 낮은 가격에 제품을 받고, 알뜰주유소에 공급해 가격을 낮추는 구조다. 이때 공급가격은 일반 주유소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기존 주유소들은 가격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를 들어 알뜰주유소가 정유사로부터 ℓ당 80원 싸게 공급받아 소비자에게 30원 싸게 판다면 소비자는 30원의 이익을 얻고 50원은 알뜰주유소의 이익이 된다. 소비자도 좋긴 하지만 판매량까지 고려하면 알뜰주유소는 수지맞을 일이다. 알뜰주유소가 로또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80원이 기존 사업자의 손실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정부는 시장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기존 생산자의 손실을 단순히 알뜰주유소와 소비자 이익으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알뜰주유소의 수입이 많아질수록 일반 주유소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정부가 나선 사업치고는 꽤나 공정하지 않은 구조다.

시장의 효율성과 혁신은 건전한 경쟁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로또라는 소리를 듣는 사업에 혁신이란 있을 수 없다. 싸게 받아 조금만 덜 싸게 팔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쇼핑 및 배송서비스 등을 겸하는 수익 다변화를 할 이유도 없고, 전기 및 수소를 공급하는 에너지 거점이 되기 위한 투자를 할 필요도 없다. 반대로 문 닫을 날만을 기다리는 일반 주유소는 투자를 위한 여력이 없다.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에 대비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 석유시장은 불공정한 경쟁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알뜰주유소 정책은 궁극적으로 단계적 민간 이양을 통해 시장 정상화를 준비하되, 단기적으로는 과도한 수익구조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알뜰주유소가 충분히 공급되면 석유공사로부터 독립된 별도 회사를 설립해 이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실용적 시장주의’와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국정 기조에 맞춰 우리의 석유시장도 혁신으로 눈을 돌려 미래 가치를 생각해야 할 때다. 불공정한 특혜를 통한 시장 교란이 아닌 에너지 전환을 위한 혁신의 지원, 이것이 새 정부가 추구하는 실용과 대전환의 가치일 것이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정보통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