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세계를 뒤흔드는 미런, 콜비

입력 2025-08-05 00:38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미런
관세 폭풍에 이론적 토대 제공
새로운 무역체계 만들자 제안

미 국방부 핵심 브레인 콜비
북한 위협은 한국이 막고
주한미군은 중국 억제 지론

관세 협상 이후 과제는 안보
미국 요구한 ‘동맹 현대화’로
우리 협상단 부담은 더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위력을 100% 활용하면서 무역 협상을 주도했다. 다른 나라들은 수출 경쟁력을 잃을까 우려해 협상에 속도를 냈고 미국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선 미국의 관세 전쟁은 주로 중국을 겨냥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1기 행정부에서는 ‘정책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는 말들이 나왔다. 절치부심한 트럼프는 2기에선 대규모 관료 집단보다는 소수의 측근들이 주도하는 정책을 펴는 쪽으로 변화했다.

올해 1월 취임으로 2기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는 새해 벽두부터 동맹과 우방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전쟁은 상반기 내내 전 세계를 들쑤셨다. 이런 군사작전 같은 관세 폭풍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이 41살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스티븐 미런이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방아쇠가 된 건 미런이 대선 직후 펴낸 ‘글로벌 무역체계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라는 41쪽짜리 보고서였다. 그는 보고서에서 미국은 현재 글로벌 무역체계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으려면 판을 뒤흔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주요 무기는 관세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달러 강세, 무역수지 적자, 제조업 약화가 불가피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세계를 상대로 대대적인 관세 공격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무역체계를 만들자는 제안은 트럼프의 오랜 지론과도 일치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실세가 된 미런의 구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관세에 이어 환율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구상이 트럼프에게 어느 정도까지 투영돼 세계에 다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많은 나라가 우려하는 이유다.

관세 협상을 타결한 우리 정부로선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더 남았다. 트럼프발 안보 청구서 협상이다. 미국은 이미 ‘동맹 현대화(Alliance modernization)’라는 의제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동맹 현대화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일대에서 관여하는 분쟁에 한국도 동맹 차원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한국의 국방비 인상,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비용 분담, 주한미군 배치 유연화 및 역할 재조정 등이다.

동맹 현대화는 미국의 새로운 국방전략(NDS)과 궤를 같이한다. 조만간 발표될 국방 전략을 주도적으로 수립하는 이는 올해 45세의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다. 미 국방부의 핵심 브레인인 그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 억제는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주한미군은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콜비는 특히 몇 년 전 저서 ‘거부 전략(Strategy of Denial)’에서 중국의 부상을 주요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는 미국 및 동맹의 안보에 중대한 도전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 차단을 위해 미국이 거부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동맹국의 방어 역량 증대가 필수적인데, 그 사례 중엔 한국도 포함된다. 한국이 중국의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연합에 큰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콜비의 이런 주장은 미국 보수 싱크탱크 등에서 주한미군의 지상 전투부대 감축 및 인도·태평양 지역 재배치, 한국의 국방비 확대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트럼프가 계속 언급해온 동맹 및 우방국의 안보 무임승차론도 이런 주장과 다르지 않다. 콜비는 미국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지원키로 했던 방공 미사일 선적을 일시 중단시키고 일본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증액할 것을 요구하는 등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직후 “나라의 국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트럼프가 곧 내밀 안보 협상은 이제 시작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의, 국방비 인상,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포괄하는 동맹 현대화 협의는 물밑이 아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동맹 현대화가 중국과의 긴장 고조로 이어지는 게 불가피한 현실에서 우리 협상단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트럼프를 통해 글로벌 통상·안보 환경을 뒤흔드는 미런과 콜비, 두 사람의 행보를 이렇듯 전 세계는 지켜만 보고 있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