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치솟은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던 박모(82)씨는 일주일에 한 번 서울시에서 걸려오는 안부 확인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잘 지냈냐고 묻고 그에 대답하는 상황이 영 어색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기계와 통화를 한다는 게 반갑지만은 않다”며 “한 달에 한 번 전화가 와도 좋으니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를 비롯해 각 지방자치단체는 AI가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건강, 식사, 불편 사항 등을 확인하는 ‘AI 안부확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고독사 등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지만 AI에 친숙하지 않은 일부 어르신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복지 서비스는 정서적 교감이 중요한 만큼 AI 기술을 접목하는 데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독거노인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60세 이상 1인 가구는 300만5000가구로 처음 300만을 넘어섰다. 서울시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2022년부터 스마트돌봄서비스의 일환으로 AI 안부확인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AI가 대상자에게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식사 및 약 복용 여부와 불편사항 등을 확인한다. 서울시는 네이버 ‘클로바 케어콜’과 SK텔레콤 ‘누구 비즈콜’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는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을 비롯해 대구, 경북 경주 등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어르신들은 형식적인 대화의 한계를 토로했다. 서울 금천구에 거주하는 육모(88)씨는 “요즘은 ‘날씨가 더우니 몸 조심하라’는 말을 반복한다”며 “형식적인 대화만 하다보니 진짜 나를 걱정해 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지난 4월 발표한 ‘2024년 서울시 스마트돌봄서비스 만족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AI 안부확인 대상자 중 우울감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48.3%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통화 성공률은 88.3%에 달했다. 정해진 유형의 질문을 하는 시나리오 기반의 평균 통화시간은 80초, 이전 대화 내용을 기억하는 자유 대화의 평균 통화시간은 110초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AI에 거부감을 느끼는 대상자들은 통신 기반 데이터 수집이나 IOT 기기 등을 통해 위험신호를 감지하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며 “카이스트, 서울시복지재단과의 협업으로 빅데이터 분석을 진행해 보다 자연스러운 대화 및 감정 대응이 가능하도록 고도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AI 안부확인 서비스가 과연 복지 대상자의 눈높이에 맞는지 의문”이라며 “AI가 아무리 좋아진다고 해도 대상자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AI에게는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는 역할을 맡기고 ‘인간’ 상담원이 대상자와 더 많이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윤선 기자 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