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한·미 관세 협상 고비를 넘자마자 대미 ‘안보 패키지’ 파고를 맞이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국방비 증액은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환경 변화에 따른 주한미군 역할 조정 문제까지 한·미 정상회담 의제로 올리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려는 분위기다. 한반도 안보 상황과 결부된 미국의 ‘비용 청구서’가 추가 제시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 휴가 중인 이재명 대통령도 고심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3일 통화에서 “관세 패키지가 타결됐지만 성공했다고만 볼 수는 없다. 애초에 미국이 없던 관세를 25%나 부과해 시작된 일”이라며 “어떻게든 15%까지 내린 것이 성공이라면 성공이지만 엄혹한 국제적 상황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릴 안보 협상 테이블에서 정부가 미국의 새로운 청구서 압박에 봉착할 우려도 제기된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5% 상호관세율이라는 큰 틀의 합의 세부 내용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보 패키지 논의까지 동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을 올해의 10배에 가까운 100억 달러(약 13조7600억원)로 인상해야 한다거나, 국방비 총액을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산 무기 구매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외교 당국자는 “관세 패키지와 마찬가지로 (안보 패키지라는) 하나의 새로운 현실이 있다”며 “안보 협상의 여러 주문 속에서 가능한 최선을 찾아가는 것이 향후 과제”라고 강조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동맹 현대화’ 요구도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대만 유사시를 가정해 대북 방어에 주력했던 주한미군을 대중국 견제에 활용하겠다는 미국 측 아이디어 자체가 한반도 안보 상황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한반도 방위 태세에 구멍이 뚫릴 수 있고, 대만해협 등에서 미·중 간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자동 개입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며 “확고한 한·미 연합 대응태세, (대북) 확장억제에 대해 다시 확인하고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동맹 현대화는 엄중한 국제질서 변화 속에서 국방력을 강화하는 등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라며 “(중국에) 우리 정부가 취할 조치를 잘 설명해왔고, 미국과도 이야기를 나눠 큰 어려움으로 대두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군의 독립적 방위력 강화, 전시작전권 환수 등 안보 공백을 메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핵 확장 억제력의 질을 높이거나 주한미군 핵심 인력을 남기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한국이 대중국 견제에서 어디까지 역할을 할 것인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과제”라고 언급했다.
휴가 중인 이 대통령은 전날 예정된 전통시장 방문 일정을 취소하는 등 한·미 정상회담 전략 마련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외교·안보 라인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각종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환 최예슬 박준상 윤예솔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