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약자에겐 위험한 욕실 문턱, 낮추거나 없애야

입력 2025-08-05 02:05

한국의 현대 가옥에서 욕실은 공중 목욕탕의 축소판이다. 욕물을 끼얹어야 하고 물청소를 해야 하니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 있다.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는 문화라서 욕실에는 슬리퍼를 신고 들어간다. 서양에서는 안 그렇다. 영국에 체류하던 시절, 우리 집 목욕탕에는 분홍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처음 그 욕실을 마주하고 느꼈던 당혹감이 생생하다. 이건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달라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봄을 고민하면서 욕실의 새로운 의미을 깨닫게 됐다. 한국의 가옥에는 반드시 몇 개의 단차가 있다. 현관, 욕실 겸 화장실, 앞뒤 베란다. 현관을 제외한 나머지 단차의 높이는 슬리퍼의 높이라고 한다. 현관의 단차는 신발이 집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벽일 것이다. 이 단차들이 장애인과 노인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하다.

단차는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게와 음식점 앞에도 있다. 폭우가 쏟아질 때를 대비한 것이리라. 그러나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정한 거절이다.

과거 미국 남부의 음식점에 붙어 있었다는 ‘No Negroes Allowed(흑인 출입 금지)’의 경고와 다를 바 없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문의 크기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가장 넓은 문은 현관문이다. 이유는 이삿짐이다. 화장실 문은 좁다. 맨몸으로 드나드는 곳이고 장롱이 지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 사람의 몸에 보행기나 휠체어가 붙어 있다면? 생각해 보면 야속하다. 현관문을 이삿짐이 사용할 일은 10년에 하루 있을까 말까다. 화장실 문을 장애인이나 노인이 사용할 가능성이 그보다 작다는 것인가. 장년에 산 집을 노인이 쓰는 것은 시간 문제다.

장애인과 노인이 사용할 때를 대비해서 처음부터 문의 크기를 키우고 단차를 없앤 집을 지을 수도 있다. 최소한 이들을 위한 개조의 가능성을 고려해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설계를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한다. 초고령화 시대에 왜 이런 것을 지체하는가.

장애인과 노인에게 불편하고 위험한 집은 곧바로 고쳐 줘야 한다. 신체 기능 저하 상태에 따라 문도 넓히고 단차도 없애고 벽에 난간도 붙이고 욕실의 미끄럼도 방지해 준다면 살기가 편하고 안전해진다. 대단히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는 ‘수선 유지 급여’ 사업으로 경보수 457만원, 중보수 849만원, 대보수 1241만원을 고시하고 있다.

(재)돌봄과 미래,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