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감각적인 패턴에 정성스러운 바느질로 마무리된 열쇠고리, 자연스럽게 흐르는 디자인이 돋보이는 천 가방.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로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인 미얀마에서 3년째 활동 중인 조에(선교사명·46) 선교사는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기자에게 알록달록, 크고 작은 소품들을 선보였다. 어느 유명 소품가게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을 법한 이 수공예품들을 만든 건 미얀마 시골 마을 아마라푸라에 사는 10대 소녀들이었다.
조에 선교사가 12년간 국내 패션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을 살려 현지에 문을 연 핸드메이드 공방 ‘비라이트(belight)’에서 함께 하는 아이들이다. 그는 “아이들 자립을 돕는다고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친구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더라”고 말했다.
공방이 있는 아마라푸라는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차로 8시간 떨어진, 전통 원단 시장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는 현지 청소년들이 지역 자원을 활용해 수공예품을 제작하는 실력을 갖춰 자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명으로 2022년 9월 이곳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인도 등에서 3년간 선교한 경험은 있었지만, 공방 운영은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자리가 없어 학교를 포기한 청소년 2명을 교육생이자 직원으로 고용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했다. 옷 디자인을 하던 자신도 소품 디자인은 처음이었다. 코로나19와 쿠데타로 관광객 발길도 끊어진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3월 말 인근 만달레이에서 최대 규모 7.9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해 5월 정식으로 공방 문을 연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에 놀라 테이블 밑에서 아이들과 손을 잡고 강한 흔들림이 끝나길 기다렸어요. 그 순간, 아이들과 손을 맞잡은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더라고요. 빨리 독립했으면 하는 조바심에 아이들에게 엄격한 모습만 보였던 건 아닌지 미안했어요.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게 먼저라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구호단체 ‘기아대책’과도 지진을 전후로 인연이 만들어졌다. 지진 발생 일주일 전 기아대책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지진 후 피해 복구 후원자를 위한 기념품을 맡게 됐다. 공방의 첫 대량 주문이었다. 조에 선교사는 “해본 적 없는 일이라 거절했다가 지진 피해를 본 공방 수리, 더 많은 청소년 교육과 채용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선교단체 업무차 잠시 한국에 들어온 조에 선교사는 오는 7일 미얀마로 돌아간다. 한국에서의 평범한 삶을 내려놓은 그의 소망은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곳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는 것이다.
“공방의 이름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빛나길 소망해요. 직원들에게 공방 이름이 적힌 예쁜 앞치마를 입히는 이유도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자부심을 느꼈으면 해서에요.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