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MZ 관료 육성하기

입력 2025-08-04 00:38

좋은 인재가 국가 구할 것
관세 협상서도 위력 발휘
'에이스' 육성에 집중해야

공무원의 인기가 시들하다지만 행정고시의 위상은 아직 건재하다. 지난해 행정고시 경쟁률은 26.5대 1. 경쟁률로만 보면 같은 해 의과대학 경쟁률(6.6대 1)을 아득히 상회했다. 5855명 중 최종 합격 문턱을 넘은 이들 221명이 노력에 대한 보상 욕구가 큰 것도 납득할 만하다. 지난달 14일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5급 사무관 대상 특강에서 “보상의 체계화를 원한다”는 말이 나온 배경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 대통령의 답변은 단호했다. “돈 벌려면 기업으로 가는 게 좋겠다. 창업하는 게 낫겠다”는 것이다. 힘든 과정을 거쳐 행시에 합격한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대통령 답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재들이 공직과 의대에 몰리는 것보다는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보상의 체계화 범주가 임금·복지가 아닌 다른 분야라면 이 제안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이 대통령은 “나름의 의미를 공직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 세대였다면 이 말 자체가 무게를 지닐 수 있었지만 시대가 변했다. 한 정부 공직자는 “신입 사무관 등 후배들은 전문성을 키워주는 ‘커리어 패스(Career Path)’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거 같다”고 평가했다. 유추하자면 전문성을 키워주는 체계가 이들에게는 보상이 될 수도 있다. 수긍할 만한 가치를 제시한다면 이는 MZ세대가 공직에 헌신하는 동력으로 작동 가능해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커리어 패스가 체계화돼 있는 일본 관료사회는 주목해볼 만하다. 금융 전문 공직자를 키우는 과정을 사례로 들어보자. 한국의 기획재정부 격인 일본 재무성에 입사해 국제금융 분야에서 ‘싹’이 보이면 능력 함양에 필요한 길이 주어진다. 금융위원회 격인 일본 금융청에 파견을 보내 금융감독 등 정책 경험을 쌓고 이후엔 외무성에서 투자 등 금융협상을 맡도록 커리어 패스가 설계된다고 한다. 이후 친정인 재무성으로 다시 돌아올 때쯤이면 금융 전문 관료가 되게끔 경력이 관리된다.

일본 관료 체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에 대응할 통상 전문가를 키워내는 커리어 패스도 있다. 이 경로를 통해 통상 협상에 특화된 인재들은 일본이 통상 마찰을 겪을 때면 어김없이 중용된다고 한다.

한국 관료사회도 ‘에이스’를 키워내기 위한 커리어 패스 설계 노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노력이 부처별로 산개해 있다. 부처를 넘나들며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일본과는 상황이 다르다. 산업통상자원부처럼 산업·통상 정책을 섭렵하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사례는 드물다. 관료들은 현행 부처별 인사 체계에서 일본식 커리어 패스 설계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굳이 이런 체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잘 키운 인재가 국가를 구하는 일을 지근거리에서 경험했다. 늘공(늘 공무원) 출신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기재부 출신으로 기업을 경험하고 돌아온 김정관 산업부 장관, 역시 늘공 출신인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사례다. 이들은 잘 단련된 실무진을 이끌고 한·미 관세 협상에 나서서 최악의 상황을 피해냈다.

앞으로도 국가 간 마찰은 여러 형태로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관료사회에 각 분야 에이스를 키워내는 일은 낭비가 아니다. MZ세대가 차후 에이스 자리를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커리어 패스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노력에 거의 예산이 들지 않는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혹자는 ‘인재를 키웠는데 기업으로 가버리면 어쩌나’라는 우려도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는 기우에 가깝다. 기업으로 떠난 인재들은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능력을 발휘한다. 이번 관세 협상에서 조선업 카드 제시를 측면 지원한 한화에는 이미 여러 명의 산업부 출신이 가 있다. 한국의 국부로 돌아온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어떨까 싶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