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이 시작되었을 때 언론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을 ‘온건파’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강경파’로 분류했다. 우리 측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베선트 장관을 만났을 때를 협상 타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 베선트 장관의 일정 문제로 지난달 25일로 잡혔던 ‘2+2 회의’가 미뤄진 게 큰 악재로 여겨졌던 이유다. 온건파인 베선트 장관 대신 강경파인 러트닉 장관과 실질적인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은 기대하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베선트 장관과의 협상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강경하고 직설적이며 협상장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역할로 악명 높았던 러트닉 장관이 협상 타결의 숨은 공신이라는 평가가 우리 측에서도 나오고 있다.
러트닉 장관과의 첫 만남에서 우리 협상단은 한·미 조선협력의 효과를 설명하는 대형 패널을 들고 갔다고 한다. 러트닉 장관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고, 협상단을 뉴욕 사저로 초청했다. 사저에서의 만남은 그의 출장지였던 스코틀랜드에서의 협상으로 이어졌다. 이후 러트닉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답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조언했다고 한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캔터 피츠제럴드에 입사한 뒤 30세가 되기도 전에 최고경영자(CEO)로 지목됐던 인물답게 이번 협상에서도 능력을 발휘한 셈이다.
하지만 그가 계속 우리의 ‘조언자’로 남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경제·무역팀에서 강경파로서 ‘돌격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그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올릴 최선의, 최종적인 안을 내라”고 요구했었다. 협상 시작 전엔 “한국 협상단이 미·일 무역 합의 내용을 보고 욕설을 했을 것”이라며 우리와 일본의 미묘한 관계를 이용해 압박하기도 했다. 향후 한·미 관계에서 한국의 조언자로 남을지, 미국의 돌격대장으로 변신할지 알 수 없지만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 연결되는 ‘키맨(key man)’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정승훈 논설위원